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뛰어난 이들의 존재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겸손의 자세, 이 시대에도 적용되는 미덕일까? 타인을 존중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세는 시대를 막론하고 갖춰야 할 자세임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자기 어필’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겸손하면서도 자신의 장점을 드러낼 줄 아는 이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 오늘 소개할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자기 어필’이라는 키워드에 꼭 맞는 인물이다.
가명에 ‘크리에이터’라는 문구를 새겨 넣은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그의 성정. 자신을 창작자라고 소개하는 그는 래퍼이자, 디자이너이자, 영상 감독이자, 레코드 레이블의 대표다. 하지만 그를 모르는 이들은 해외 ‘밈’에서 본 얼굴로 기억할 수도 있다.
늘 인터넷에 엽기적인 사진을 올리며 유쾌한 면모를 드러냈기 때문. 그의 힙합 크루 ‘OFWGKTA’부터 패션 브랜드 골프 왕까지. 유쾌한 장난꾸러기 가면 뒤에 숨겨진 그의 ‘폴리매스(Polymath)’ 모먼트를 함께 들여다볼 시간이다.
오드 퓨처 울프 갱 킬 더 올
오드 퓨처 울프 갱 킬 더 올, a.k.a. OFWGKTA.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어울려 놀았던 타코, 멜로하이프, 레프트 브레인 등과 함께 2007년에 결성한 이 힙합 크루는 현재 60여 명까지 크루원을 늘리며 ‘힙합 크루’보다는 ‘창작 집단’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싱어송라이터부터 뮤직비디오 감독, 스케이트 보더, 하입 맨(Hype Man)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오드 퓨처 크루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 리스너들이 애정하는 뮤지션, 프랭크 오션과 시드 다 키드 역시 오드 퓨처 크루 소속 멤버다.
그들은 결성 직후인 2008년부터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며 크루의 색깔을 드러냈고, 2012년에는 ‘Camp Flog Gnaw Carnival’이라는 뮤직 페스티벌까지 개최하며 입지를 다졌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브랜드로 알려진 골프 왕의 이름 자체도 ‘울프 갱(Wolf Gang)’이라는 단어를 비틀어 작명한 것. 오드 퓨처 크루와 타일러의 작업물들을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가 긴밀한 영감을 주고받으며 창작 활동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오드 퓨처 크루의 케미는 2012년에 어덜트 스윔(Adult Swim) 채널에서 방영했던 <Loiter Squad>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 라이브 액션 스케치 코미디 쇼인 <Loiter Squad>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얼 스웻셔츠, 타코 등 많은 오드 퓨처 멤버들이 출연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에이셉 라키 그리고 칸예 웨스트
다재다능한 면모를 제쳐둔다 해도 그의 존재감은 미약해지지 않는다. 숨겨지지 않는 ‘인싸력’을 발휘하며 많은 유명인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이기 때문. 켄달 제너의 ‘래퍼 남사친’으로도 이름을 알린 타일러는 오드 퓨처 크루 멤버들 외에도 넓은 인맥을 자랑하는데 그중에서 돋보이는 것은 래퍼 에이셉 라키와의 친목이다.
그들은 서로의 패션을 공개적으로 디스 하는가 하면, 에이셉 라키가 관중 속에서 중요 부위를 붙잡혀 인상 쓰는 사진을 타일러가 인스타그램 프로필로 등록하고 케이크로 이를 프린트하는 등 매콤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는 사이다.
장난스러운 행보와는 달리 둘은 돈독하고 끈끈한 의리를 자랑하는데, 에이셉 라키가 스웨덴에서 체포되어 수감되어 있는 동안 타일러는 계속해서 무죄를 주장하며 스웨덴에서의 공연을 거부한 적도 있다. 둘은 ‘Rocky And Tyler’라는 이름으로 과거에 함께 투어를 다닌 전적도 있다고.
또 하나의 특별한 인연은 칸예 웨스트, a.k.a. 예와의 우정이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혁신적인 뮤직비디오와 음악 작업물로 많은 업계 관계자들에게 ‘샤라웃(Shout out)’을 받았는데 예 역시 타일러를 샤라웃 했던 인물 중 하나. 그는 타일러의 ‘Yonker’ 뮤직비디오를 공유하며 ‘올해의 영상’이라고 극찬했으며 로스앤젤레스의 97.1 AMP 라디오에 출연해 “타일러는 아티스트이자 혁명가이자 나의 멘토다.”라고 발언했다. 2016년에 열린 골프 왕 패션쇼에도 참석한 그는 쇼가 끝나고 난 뒤, 현장에 있던 모든 관중들을 위해 ‘Golf Le Fleur’ 신발을 구매하기도 했다고.
골프왕
자, 이제 타일러의 정체성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 ‘골프 왕’에 대해 조금 더 속속들이 살펴볼 차례다. 골프 왕은 그가 설립한 스트리트 웨어 패션 브랜드로 과감한 컬러 초이스, 트렌디한 그래픽이 인상적인 아이템들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는 브랜드다. 타일러가 어린 시절부터 스케이터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꽤 노련한 스케이트 보딩 솜씨를 갖고 있는 만큼 컬렉션은 스케이트보드 패션 위주.
타일러의 평소 패션 센스를 엿볼 수 있는 이 브랜드는 반스와의 콜라보로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반스와 안녕을 고하고 손잡은 컨버스와 ‘Golf Le Fleur’라는 협업 라인을 공개하며 다시 한번 주목받은 바 있다. 2019년에는 라코스테와 함께 ‘GOLF le COSTE’라는 이름으로 SS 컬렉션을 선보였으며 제니스 스플랜디드 아이스크림, 일본의 향수 브랜드 리토우와도 함께 작업하며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타일러는 그의 곡, ‘I Ain’t Got Time!’에서 “난 컨버스랑 얘기하지, 왜냐면 반스는 완전 엉망이거든”이라는 가사를 공개한 적도 있다. 많은 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창의성을 발산할 수 없는 콜라보를 원치 않는 그의 소신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 강렬하지만 촌스럽지 않은 색감을 지닌 아이템에 타일러의 센스가 더해진 골프왕의 컬렉션들은 지금까지도 열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두 지역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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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Favim, Pinterest/giu, Instagram/felicathegoat, Twitter/tylerthecreator, Casper Kofi, Defining.co, Getty Image/Dave Benett, Golf W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