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브랜드 ‘언더커버’의 과거 컬렉션 사진을 보게 됐다. 파리에서 공개된 2004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일란성 쌍둥이 모델들을 활용해 독창적인 무대를 선보인 것. 같은 디자인의 옷을 한 명은 새것 그대로, 다른 한 명은 망가진 형태를 입고 등장한 것을 본 에디터는 이 흥미로운 연출에 호기심이 생겼다.
언더커버가 일본을 대표하는 스트릿웨어 브랜드라는 건 익히 들어 알지만, 도쿄에서 시작한 이 브랜드가 어떻게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매년 꾸준히 컬렉션을 발표하며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확립해 온 언더커버. 그 시작과 현재까지의 여정을 가볍게 훑어보고자 한다.
언더커버의 시작

브랜드 창립자 ‘준 타카하시(Jun Takahashi)’는 1988년, 도쿄의 패션 전문학교인 문화복장학원에 입학했다. 학창시절 그는 런던의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에 심취해 직접 ‘도쿄 섹스 피스톨즈’ 밴드를 결성할 정도로 펑크를 좋아했다. 언더커버의 짙은 펑크 감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인 것.
꿈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중, 친구의 권유로 접한 꼼데가르송 패션쇼에서 깊은 영감을 받은 그는 자유로운 창작의 디자인을 꿈꾸며 친구의 도움을 받아 브랜드 ‘언더커버(UNDERCOVER)’를 설립하게 된다.

1990년 초기 언더커버는 그래픽 티셔츠와 리메이크된 빈티지 아이템 중심의 아카이브를 선보였다. 그러다 1993년, 일본 스트릿웨어 브랜드 ‘베이프(A BATHING APE)’의 설립자인 ‘니고(NIGO)’와 함께 도쿄 하라주쿠에 ‘노웨어(nowhere)’라는 편집숍을 오픈하게 된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각각의 브랜드를 전개해 나갔고, 이는 스트릿 패션의 중요한 거점이 된다.
패션계의 주목을 받다

여기까지 알 사람은 알던 언더커버는 1994년 첫 번째 런웨이 쇼를 성공적으로 마치며 정식 브랜드로 자리 잡는다. 특히, 이때 타카하시의 롤모델이자 꼼데가르송의 수장인 ‘카와쿠보 레이(Kawakubo Rei)’의 눈에 띄면서 그녀의 지원 덕분에 이후 파리 컬렉션에 설 기회까지 얻게 된다.
이미 일본 내에서는 점차 주목받던 시기였다. 니고와의 독립 후 1997년, 일본 ‘마이니치 패션 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것. 당시 언더커버는 티셔츠에 실크 프린팅을 입힌 혁신적인 시도로 주목받았고, 이후 2001년 같은 곳에서 대상을 받는 영예까지 얻게 된다.

그리고 2002년, 마침내 파리 패션위크 무대에 섰다. 어두우면서도 어딘가 거친 듯한 언더커버의 의상은 가까이 볼수록 정교한 패턴과 디테일이 돋보였고, 동시에 전 세계 패션 관계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언더커버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하게 된 순간이기도 한 것.
파리에서의 성공적인 데뷔 이후, 언더커버는 일본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특히 2010년에는 브랜드 최초로 남성복 컬렉션만을 선보이며 세련된 감각으로 큰 호평을 받기도 한다.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언더커버하면 브랜드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빼놓을 수 없다. 2010년, 타카하시가 러닝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나이키(NIKE)’와 손잡고 ‘갸쿠소우(Gyakusou)’ 라인을 선보였다. 가벼우면서 기술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이 러닝웨어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인기 프로젝트이기도. 2018년에는 반투명 소재를 활용한 디자인의 스니커즈를 출시하는 등 꾸준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같은 스트릿웨어 브랜드인 ‘슈프림(Supreme)’과도 시너지를 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네 차례의 걸쳐 진행된 이들의 협업은 반항적인 이미지와 펑크 정신을 극대화한 컬렉션으로 눈길을 끌었다.
하이엔드 브랜드와의 협업도 인상적이다. 2019년에는 ‘발렌티노(Valentino)’가 언더커버와 함께한 강렬한 그래픽 디자인이 돋보이는 컬렉션을 발표했으며, 반대로 2021년에는 유니클로의 자매 브랜드 ‘GU’와 협업해 보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컬렉션을 출시하며 폭넓은 소비자층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처럼 스트릿 패션과 하이 패션의 경계를 허무는 언더커버는 대부분의 협업 제품이 한정판으로 출시되는 만큼, 발매와 동시에 높은 리셀가를 기록하며 강력한 브랜드파워를 증명하고 있다.
어느덧 35주년

지난 1월, 글로벌 데님 브랜드 ‘리바이스(Levi’s)’가 언더커버의 35주년을 기념한 협업을 공개하며 브랜드의 긴 역사를 축하했다. 오늘날의 한국에서는 어떨지 모르나, 일본에서는 여전히 스트릿 패션을 대표하는 1세대 레전드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이 브랜드를 애정해온 팬들에게 꾸준한 사랑이 이어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We Make Noise Not Clothes’라는 슬로건 아래, 언더커버는 패션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메시지를 만들어왔다. 일본의 작은 편집숍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 그 쉽지 않은 여정에 독창적인 시각으로 그들만의 색을 지켜온 것. 그러니 계속해서 기대하고 싶어졌다. 여전히 멈추지 않은 채 새로운 ‘소음’을 만들어갈 앞으로의 언더커버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