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을 상징하는 록스타, 지금은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을 떠올린다. 잘생긴 외모에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펑크 정신을 이어받은 음악, 패션계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는 패션 스타일까지. X세대의 대변자로 불리며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절을 풍미하던 한 명의 록스타를 조용히 묻어둘 수는 없다. 바로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의 ‘액슬 로즈(Axl Rose)’.
건즈 앤 로지스의 음악은 오히려 너바나 음악보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Welcome to The Jungle’ ‘Sweet Child O Mine’ 등의 곡들이 배경음악으로 꽤나 자주 나오기 때문.
아무튼, 양대 산맥을 이루던 두 밴드는 꽃미남 보컬 둘을 중심으로 충돌이 꽤나 있었다. 잦은 주먹질과 상남자의 상징이었던 액슬 로즈. 그리고 불안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때로는 사춘기 청소년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커트 코베인의 싸움은 ‘남성성’에 대한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커트 코베인과 액슬 로즈의 대격돌 이야기. 이놈의 꽃미남들은 어떻게 싸웠을까?
잘 지내 보자, 커트 코베인
처음부터 서로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액슬 로즈는 커트 코베인에게 먼저 손을 건넸다. 인터뷰에서 너바나의 음악이 들을만하고, 너바나의 데드 스마일 로고가 박힌 모자를 쓰고 건즈 앤 로지스의 ‘Don’t Cry’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로 했다.
액슬 로즈는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 커트 코베인을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너바나가 그런지 록을 들고 세상에 나왔을 때 액슬은 그가 좋았기 때문에 매체에서 언급을 했던 것. 그러나 상대는 펑크 정신을 계승한 커트 코베인이었다.
전화 좀 그만 걸어
커트 코베인은 전설의 앨범 [Nevermind] 발매 후 홍보하면서 “건즈 앤 로지스처럼 말할 게 전혀 없는 밴드가 아니다.”라며 선을 제대로 그었다. 그래, 돈과 명성보다는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더 중요시하는 너바나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액슬 로즈는 너바나에게 자신의 투어 오프닝 공연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건즈 앤 로지스는 최고의 락 밴드였기 때문에 너바나가 명성을 원한다면 둘도 없는 기회였을 터. 그러나 커트 코베인은 수십 번 걸려 온 전화를 모두 거절하며 비난했고, 액슬 로즈도 더 이상 참을 수는 없었다.
“중독자 아내를 둔 빌어먹을 중독자, 그들 사이에 아이가 기형이라면 둘 다 감옥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
액슬은 커트 코베인의 아내 ‘코트니 러브’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언급했다.
1992년, 일이 터졌다
록 음악이 메인스트림이었던 당시, MTV의 비디오 뮤직 어워즈(이하 VMA)는 한 시대를 장식하는 시상식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싸움이 벌어졌다.
커트 코베인은 아내 코트니 러브 그리고 태어난 아이와 함께 시상식에 참여했다. 이전에 약쟁이라며 놀리던 액슬 로즈가 커트 코베인 가족 앞을 지나갔다. 그러자 코트니 러브는 액슬 로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우리 아이의 대부가 되어줄래요?”
사고를 그렇게나 치던 액슬 로즈에게 대부 타이틀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액슬 로즈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버지를 피해 도망쳐 나와 아버지 없이 자란 터라 더욱 민감했을 것. 심지어 그의 꿈은 최고의 아버지였다. 코트니 러브가 대놓고 그를 무시한 셈이다.
“도로로 끌고 나가기 전에 닥쳐 이년아”
액슬이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하자, 커트 코베인은 아내에게 “닥치래 이년아!”라며 그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현장에서 이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각 밴드 멤버들도 싸움이 터지기 직전이었다고.
너바나는 VMA 공연에서 무대를 부수고 “안녕, 액슬(Hi, Axl)”을 연신 외쳐댔다. 화가 난 액슬 로즈가 잡아 죽일 기세로 달려갔지만, 이미 이들은 모두 무대 뒤로 도망가고 없었다.
해당 상황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커트 코베인이 인터뷰를 통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후에도 액슬은 커트 코베인에게 “고작 음악 하는 주제에 있는 척하는 놈들”, 커트 코베인은 액슬 로즈에게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자”라며 수위 높은 언쟁을 이어나갔다.
죽음에 화도 죽었다
1994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커트 코베인. 보컬 두 명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너바나와 건즈 앤 로지스의 불화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VMA에서 다투기 직전까지 갔던 건즈 앤 로지스의 베이시스트 ‘더프 맥케이건(Duff Mckagan)’은 ‘크리스 노보셀릭(Krist Novoselic)에게 사과했고, 건즈 앤 로지스 드러머였던 ‘맷 소럼(Matt Sorum)’은 너바나에게 가장 먼저 조의를 표했다.
데이브 그롤(Dave Grohl)은 슬래시(Slash)와 적개심 없이 함께 공연을 펼치고, 액슬 로즈와는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
현재 데이브 그롤이 활동 중인 밴드 ‘푸 파이터스(Foo Fighters)’에서 다리 골절로 인해 의자에 앉아 공연을 펼쳤는데, 다음 해에 액슬 로즈도 다리를 다쳐 데이브 그롤의 의자를 빌려 쓰기도 했다. 왕좌의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해당 의자는 ‘로큰롤 왕좌’라고 불리고 있다고.
여전히 시대의 록스타로 불리고 있는 커트 코베인과 액슬 로즈의 싸움. 지금 두 밴드 출신 멤버들이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서로 진심으로 미워했을 수도 있지만, 가십거리로는 둘이 친구라는 말보다는 죽일 듯이 싸웠다는 이야기가 훨씬 자극적이고 관심을 끌어모으기 쉬웠을 테니까.
아버지 없이 자란 액슬 로즈, 아버지를 평생 증오하며 살았던 커트 코베인. 불우한 어린 시절에 접한 ‘록 음악’으로 삶을 바꾼 일까지. 둘은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을 쌓아왔다.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면, 삶에 관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철이 들만한 나이가 됐을 지금쯤에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