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의 시그니처 아이템, ‘맥시스커트’는 소아마비의 흔적을 가리는 용도였다
20세기를 상징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인 프리다 칼로는 미간까지 일자로 이어지는 유니브로우, 머리의 꽃 장식 등 아이코닉한 스타일들을 선보여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의 패션에서 ‘디폴트 값’처럼 자주 찾아볼 수 있었던 아이템은 바로 맥시스커트.
그녀의 패션에서는 원피스, 투피스 등 다양한 형태의 맥시스커트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녀가 착용한 옷들과 작품들을 전시한 전시회 <Frida Kahlo : Making Her Self Up>의 큐레이터 쎄어씨 헤네스트로사(Circe Henestrosa)는 프리다 칼로가 6살 때 앓았던 소아마비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 맥시스커트를 착용했다고 밝혔다.
소아마비로 인해 왼쪽 다리보다 오른쪽 다리가 짧아졌기 때문. 그녀는 양쪽 다리를 수평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개의 양말을 신거나 긴 치마로 다리를 가리고 다녔다고 밝혀졌다.
탈모를 앓았던 앤디 워홀은 은색 가발을 머리에 ‘붙이고’ 다녔다
시크한 올블랙 패션에 은색 머리는 앤디 워홀을 상징하는 요소들이다. 그의 감각적인 작품들과 독보적인 스타일이 자아내는 일련의 이미지 덕에 그를 당당한 패셔너블 아티스트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는 사실 많은 콤플렉스들을 갖고 있었다고.
작고 마른 체구, 피부, 코, 가늘고 숱 없는 머리 등 수많은 외적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그는 “어깨가 좁다”라는 친구의 말에 YMCA에서 보디빌딩을 시작했으며 1956년에는 코 성형 수술을 했다고 알려졌다. 코 수술에 실패해 그가 한동안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는 것은 비밀.
또, 같은 해에 그는 첫 가발을 구매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부터 탈모질환을 앓았던 그는 머리카락에 대한 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개의 은색 가발을 구매해 두피에 붙이고 다녔다고 전해졌다.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그의 가발들은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었으며, 그중 1점은 2006년에 경매에 나와 1만 8백 달러 (한화로 약 1338만 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1987년, 그가 담낭 수술을 받고 사망한 이후 그의 집에서는 수백 점의 가발이 발견되었다고. 현재 그의 가발 컬렉션 중 40점은 피츠버그 앤디 워홀 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살바도르 달리가 집착했던 그의 콧수염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그의 시그니처 룩을 구성하는 메인 요소는 역시 ‘10시 10분’을 가리키는 긴 콧수염일 것. 스페인의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를 존경하던 달리는 그를 따라 20대 때부터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는 대신 콧수염을 기른다고 말할 정도로 수염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고. 주변 인들에게 “콧수염 하나 하실래요?”라며 묻고 다녔다는 일화도 있다. 그런 그가 사망한지 약 30년이 지난 2017년, 한 여성이 제기한 친자 소송으로 인해 그의 시신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DNA 샘플 채취를 해야 했기 때문.
그의 시신 발굴을 도왔던 방부업자는 라디오에 출연해 그의 수염이 여전히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고 공개했다. 수염만큼은 말끔하게 보존되어 있는 그의 모습이 ‘기적’과 같았다고.
만능 재주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가방도 디자인했다
음악, 미술, 과학, 천문학, 해부학, 수학 등 수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전무후무한 ‘만능 재주꾼’의 역사를 써 내려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업적 또한 남긴 바 있다.
1497년에 그가 제작한 빅토리아 가죽 가방은 이탈리아의 가죽 브랜드인 게라르디니에 의해 소량 제작되기도 했다고. 또, 그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매우 긴 로브를 착용했던 당시에 무릎까지 오는 로즈 컬러 로브를 착용하며 패셔너블함을 뽐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