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 어디 가지?’라는 친구에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나의 모습. 클럽에 문외한이기도 하고 구체적으로는 어떤 클럽에서, 무슨 음악을 틀어주는 지에 대한 정보도 모른다.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 당장이라도 이태원 밤거리로 뛰어나갈 친구들과 함께라면 그 어느 곳도 두렵지 않다. 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싶지만, 더욱이 여유로운 분위기와 함께 나에게 부족한 클러버 페르소나를 장착해 줄 정보들. 좋은 음악이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개성 가득한 이태원의 베뉴를 필자의 경험에 따라 단계별로 친절히 소개한다.
BOLERO @boleroseoul 용산구 이태원로 220 B1
보광동의 와인바에서 제일기획 옆으로 둥지를 튼 지 어느덧 2년째. 한강진 방면으로 거니는 길목에 위치한 볼레로는 방문객이 많이 붐비는 시간이 되면, 주변을 맴도는 이들을 보는 재미도 한몫 한다. 헤어스타일, 성별, 아웃핏의 조합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음악을 즐긴다’라는 목적은 공통분모. 이 곳의 시그니처라 함은 디제잉 바를 서포트하는 글라스블럭과 진한 레드 컬러의 테이블 좌석이 아닐까. 파리의 베뉴 씬을 활약하고 있는 Bena idris의 내한부터 올드스쿨 K-POP이 담겨있는 줄리아나 가요주간까지. 길쭉하게 늘어진 행렬의 도착점인 디제이는 매주 상이하니, 그들의 인스타그램을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Cakeshop @cakeshopseoul 용산구 이태원로 134
이태원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녹사평 방면의 ‘케이크샵’. 끝날 줄 모르던 코로나바이러스를 용감하게 이겨내고 어느덧 10주년을 넘어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강남에 위치한 메이저 클럽과는 사뭇 다르게 EDM이나 해외 팝과 거리가 먼, 가장 ‘힙합 클럽’에 가까운 곳이 아닐까. 베이스 뮤직을 주로 다루기도 하지만, 하우스나 퓨처리스틱 등 폭넓은 플레이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그를 바탕으로 하는 건, 거의 매주마다 진행하는 해외 아티스트들의 내한. 그들의 행보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을 대표하는 이태원의 터줏대감으로 봐도 무방하다.
NYAPI @nyapi_seoul 용산구 이태원로 187 3층
‘바비’ 아니고 ‘냐피’. 이태원에서만큼은 핑크는 그들만의 색깔로, 어두운 조명이지만 화려하게 발산한다. 뭇 클러버들이 말하길 착한 맛의 테크노를 즐길 수 있다지만, 이곳은 ‘Home of the free’. 장르에 국한하지 않는 다양한 음악들의 변주, 플로어와 함께한 다이닝 공간까지 더해져 그들의 베뉴를 완성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클럽 디제이인 FFAN의 아버지, ‘이진’이 운영하던 바의 이름을 딴 냐피. ‘야간 피난소’라는 단어에서 출발한 이 곳에 방문해, 잠시나마 정신없이 달려온 우리의 영혼을 피난시킬 필요가 있다.
코끼리 @kockiri_official 용산구 우사단로 46
유독 잘생긴 남자들이 많은 이 곳. ‘이태원 이반업소’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잘 노는 게이들은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코끼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끼리는 그들과 함께 하는 모두를 열렬히 환영한다. 손에 들린 플라스틱의 술잔과 함께 테라스에서부터 환하게 빛나는 주광색 조명은 애프터 파티에 온 듯한 느낌. 위트 있는 비디오그래피와 이곳에 모인 방문객들의 대화가 만드는, 캐주얼하고 발랄한 바이브에 몸을 맡기자. 클럽 중 가장 간단하지만 친절한 라인업을 안내하고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당신의 취향에 맞는 디제이를 위한 디깅 타임을 가져보는 것도 추천.
링 @ring_seoul 용산구 이태원로 165-6
상단에서 언급한 친절한 라인업은 가라. 비밀스러운 디제잉과 은은하게 풍겨오는 그들만의 기묘한 분위기 ‘링’. 이태원을 대표하는 ‘테크노’의 대표 격 베뉴로 소개하고 싶은 곳이다. 미니멀 하우스를 기반으로 하는 곳으로, 형용할 수 없는 사운드는 세심하게 구성된 바이닐 레코드로 재생된다. 막혀있는 디제잉 바의 다른 베뉴들과는 달리, 링은 유독 개방적이고 디제잉 바의 층고도 높은 편이다. 이는 방문객에게 음악에 어우러지는 자유로움을 주는 그들만의 시그니처. 3번 출구를 따라 골목 한 켠에 위치한 초록색의 네온사인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특별한 주말에는 ‘테크노’에 몸을 맡기는 링에 방문해보자.
파우스트 @faustseoul 용산구 보광로 60길 7 3층
한국에서 가장 레어한 테크노를 트는 클럽, ‘파우스트’. 바깥에서 올려다보는 이 곳은 철저한 방음재 덕분에 어떤 음악을 트는지 가늠이 어렵다. 입장과 동시에 플로어를 마비시키는 조명과 치밀하게 방문객의 정신을 해체하는 음악이 만나, 공포영화의 스틸컷을 연속으로 교차하는 느낌. 케이크샵과 대등하게, 해외에 무대를 두고 있는 디제이들의 내한을 공격적으로 진행하는 곳 중 하나이다. 단순히 우리의 입맛에 맞는 클럽과 사뭇 다른, 그들의 입맛에 우리를 녹여야 하는 곳.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음악에 몸을 맡기다, 입장료와 함께 나눠주는 프리 드링크 쿠폰으로 ‘탄즈 바’에서 목을 축여보자. 탄즈 바와 파우스트의 조합은 당신을 일출까지 끌고 갈 몰입감을 선사할 것이다.
*본 기사는 건전한 레이브 문화를 지향하고, 과격한 음주문화를 지양합니다.
사진: Instagram/ @boleroseoul, @bbabdae, @divineheem, @nyapi_seoul, @just2njo2, @ring_seoul, @faust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