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패션 팬들에게 비보가 전달됐다. 죽어가는 셀린에 심폐소생술을 성공시킨 셀린의 영혼이자 사령탑, 피비 파일로의 안녕이었다. 그녀가 떠나자 모두 올드 셀린을 내놓으라고 울먹이듯 말했다. 하지만 필자는 기뻤다. 피비 파일로파가 있듯이, 컬트적인 인기를 끄는 또 한 명의 디자이너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셀린에 새로운 장기를 이식해 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에디 슬리먼의 귀환. 나에게는 피비 파일로가 잘 있으라며 흔든 손보다 반가웠다.
패션계의 반항아, 에디 슬리먼은 누구길래, 올드 셀린을 지울 수 있었나?
에디 슬리먼과 마른 남자들의 반격
“마른 몸은 옷을 입기에 훨씬 낫다. 큰 체형, 다시 말해 몸집이 큰 것은 옷을 벗었을 때가 더 낫다.
물론 개인적인 선호도와 취향의 차이지만 남자들에게도 다이어트는 필요하다.”
– 에디 슬리먼
이브 생로랑 리브 고슈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에디 슬리먼.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든든하고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덕분에 어릴 적 에디 슬리먼의 마른 몸매는 놀림거리였다.
디올 남성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그는 마른 남성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놀림거리였던 자신의 스키니 실루엣을 럭셔리 패션 하우스에서 과감하게 선보였다. 꽤나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디올’에서 기존의 남성상을 깨뜨리려 하다니. 그러나 그의 도전은 디올 옴므 매출의 고공행진으로 이어졌고, 너 나 할 것 없이 남성들은 에디 슬리먼이 건넨 스키니진과 블랙 타이를 흠모하게 되었다.
패션계의 제우스, 칼 라거펠트를 다이어트하게 만든 에디 슬리먼
샤넬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마저 에디 슬리먼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에디 슬리먼의 옷을 입기 위해 무려 40KG 이상을 감량했다고 한다.
칼 라거펠트는 당시 다이어트의 경험을 <The Karl Lagerfeld Diet>라는 책으로도 담아냈다.
에디 슬리먼의 옷을 입고 싶지만, 아직 마른 몸매를 얻지 못한 당신, 이 책 한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빅뱅, 강동원 등 당시 최고의 스타들이 디올 옴므를 착용하며 대 스키니 시대를 열었다. 강동원은 최근 <피식 쇼>에 셀린느 자켓을 입고 나와 에디 슬리먼에 대한 사랑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덕분에 전 세계 남성들의 두 다리는 숨을 쉬게 해달라며 통곡했다.
“논란 없는 혁명은 없다”
디올, 생로랑 그리고 셀린느. 에디 슬리먼이 패션 하우스를 맡을 때면 언제나 논란을 빚는다. 사람들은 그가 디렉터 자리에 오를 때마다, 브랜드의 유산이 파괴된다고 말한다. 피비 파일로가 구축해온 셀린 스타일을 한 번에 갈아엎었고, 스테파노 필라티가 떠난 생로랑을 맡을 때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럴만하다.
고고하신 럭셔리 브랜드에 길거리 유스 컬처를 접목시킨 것도 에디 슬리먼이다. 현재 많은 럭셔리 브랜드에서 유스 컬처를 적극 차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만들어낸 논란은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보였다.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에디 슬리먼은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는다. 그는 틱톡 스타들을 셀린의 21S/S ‘The Dancing Kid’에 데려왔다. 여전히 다수가 적응하지 못하지만,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유스 컬처인 틱톡 문화를 주목한 것이다.
그렇다고 브랜드의 유산을 완전히 지워버리진 않는다. 생로랑 시절에는 리브 고쉬 라인을 재현해 내는 일에 착수했었고, 셀린에서는 트리옹프 C로고를 부활시켜 셀린의 숨겨진 아이덴티티를 다시 끌어내기도 했다.
개인 브랜드화 시킨다, 자기 복제한다, 여기저기서 욕을 해도 에디 슬리먼의 혁명은 성공한다. 그렇기에 CEO의 눈에 그의 손길은 흥행 보증 수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