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디다스, 마르지엘라, 디올, 리프로덕션 오브 파운드. 많고 많은 독일군 스니커즈. 2019년쯤이었나, ‘오랜만에 다시 왔네’ 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던 독일군 스니커즈는 완전한 스테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한창 ‘나이키 덩크 로우 돌고래’가 거리를 휩쓸었던 대 나이키 시대, 2021년에도 무신사 스토어 인기 아이템 랭킹 1위가 ‘아디다스 BW 독일군이었다고.

이에 더해 ‘마르지엘라 독일군 페인팅’ 스니커즈로도 자리를 굳건히 했다. 쉐입이 다른데도 나이키 덩크를 살지, 독일군을 살지 고민했다.

아디다스, 마르지엘라, 디올, 리프로덕션 오브 파운드? 그래서 어디가 독일군 스니커즈의 근본일까? 독일군이 이 신발을 진짜 신기나 했을까?
물음표 세 개를 느낌표로 바꾸고 싶다면 60년대, 아디다스와 푸마의 다슬러 형제가 싸우기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디다스와 푸마로 갈라섰다
간단히 먼저 이야기를 하자면, 아디다스와 푸마의 설립자는 형제다. ‘형제였다’라고 해야 할까. 독일에서 사이가 가장 좋지 않은 형제로 유명한 이들, 시작할 땐 함께였다.

아버지에게 신발 공장을 물려받아 ‘다슬러 형제의 신발 공장’을 차렸고, 1936년에 펼쳐진 베를린 올림픽에서 ‘제시 오언스’라는 미국 스타 육상 선수에게 신발을 후원했다.

결과는 대성공. 제시 오언스가 대회에서 금메달만 4개를 목에 걸었다. 다슬러 형제의 신발 공장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둘 사이는 2차 세계대전 중 갈등이 벌어지며 멀어지게 된다. 그렇게 형은 푸마를, 동생은 아디다스를 운영하게 된다.

나치 독일의 잔재를 지우기 위해 서독은 새로운 육군 생활화가 필요했다. 푸마와 아디다스에게 생활화 디자인을 의뢰했고, 이때 독일군 스니커즈, ‘BW Sports’가 등장했다. ‘BundesWehr Sportschuhe’. 독일 연방군의 운동화의 탄생은 푸마와 아디다스에 의해 생겨난 것. ‘GMT(German Military Trainer)’ 혹은 ‘GAT(German Army Trainer)’라고 불렸다. 한국에서도 휘황찬란한 이름 없이 담백하게 ‘독일군’으로 부르고 있다.

독일군 스니커즈의 디자인은 제시 오언스가 신었던 스파이크 신발과 꽤나 유사하다. 당시 제시 오언스 신발의 디자인을 다슬러 형제가 같이 했으니, 이 누가 ‘원조’라고 하기가 어렵게 됐다. 푸마와 아디다스는 모두 자신들이 생산했다는 근거 자료를 내세우며 ‘독일군의 원조는 나야’라고 외치는 중이다. 뭐, 함께 만들었던 신발의 디자인에서 독일군 스니커즈의 디자인이 나왔을 터라, 누가 근본이고 원조인 지는 결국 둘만의 전쟁이 되었다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망치로, 곡괭이로. 1989년, 철벽같던 베를린 장벽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통일이 된 ‘독일’은 자연스럽게 국방비를 줄이게 되었다. 넘치도록 남아 있던 군수품들도 쓸모가 없어졌다. 결국 독일군 스니커즈는 연병장에서 시장으로, 길거리로 나오게 됐다.

이 무렵, 독일과 가까운 나라인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전설이 될 패션 디자이너가 독일군 스니커즈를 발견한다. ‘마틴 마르지엘라’였다. 그는 곧장 독일군 스니커즈를 사들여 왔고, 자신의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1999S/S 컬렉션에서 독일군 스니커즈를 선보였다. 신발에 낙서도 하며 수차례 독일군 스니커즈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던 마르지엘라는 2005년, 복제, 복각이라는 뜻이 담긴 ‘레플리카’라는 이름으로 자체 제작을 시작했다.



패션으로서의 독일군 스니커즈가 시작된 셈이다. 군수품으로 납품했던 아디다스와 푸마 역시 마르지엘라를 기점으로 패션 아이템 독일군 스니커즈를 내놓았다. 동시에 에디 슬리먼의 디올 옴므도 ‘B01’이라는 이름으로 독일군 스니커즈를 출시했다. 잉여 군수품으로서 길거리에 많이 보이던 신발이 이제는 너도 나도 멋부리고 싶어 신게 된 것이다.


나이키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고, 그 자리를 아디다스의 슈퍼스타와 삼바가 차지했다. 1950년부터 나온 아디다스의 삼바의 어퍼, ‘티 토(t-toe)’ 디자인은 독일군 스니커즈와 꽤나 유사하다. 지금 가장 떠오르는 스니커즈라고 할 수 있는 푸마의 스피드캣 역시 비슷한 어퍼 디자인을 차용했다.

아디다스와 푸마의 설립자, 다슬러 형제의 싸움으로 시작되는 독일군 스니커즈의 역사. 뭐 꾸준한 인기를 구가했지만, 아디다스의 삼바, 푸마의 스피드캣, 프라다의 아메리카컵과 함께 다시 ‘정상’에 우뚝 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