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밀러, 주스 월드 등 많은 아티스트가 마약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오늘의 주인공 역시 마약 중독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커트 코베인이 롤 모델이었던 그가 죽음까지 따르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의 죽음으로 릴 우지 버트는 금약을 선언했고, 포스트 말론은 그의 얼굴을 문신으로 새겼다.
모두가 ‘Flex’, ‘Let’s Get it’을 외치며 자기 과시를 하던 힙합 대 유행 시대에 자신의 우울함을 솔직하게 써 내려간 래퍼. 이모 힙합의 문법을 제시한 그는 릴 핍(Lil Peep)이다.
저는 외톨이였어요
릴 핍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모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교육자 집안이었다. 그러나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10대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했다. 불안정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는 대부분의 친구를 인터넷에서 만났고, ‘Trap goose’라는 예명으로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음악 활동을 했다.
음악은 그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고향을 떠나 LA에서 음악에 전념하기로 한다. 새롭게 둥지를 튼 곳에서 친구 집에서 살기도, 노숙을 하기도 했지만 온라인으로만 만났던 ‘Ghostmane’ , ’Craig Xen’ 등 음악 하는 친구들을 현실에서 만나 함께했다.
힙합의 장벽을 제거하다
힙합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자기 과시와, 폭력성. 릴 핍의 음악은 정형적인 힙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자신의 우울감과 분노, 불안정을 섬세하게 가사로 써 내려갔고, 록 음악 샘플과 트랩 사운드가 섞인 이모 힙합(Emo Hiphop)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모든 별엔 이유가 있어. 빛나는 이유가”
-’Star shopping’ , Lil Peep
릴 핍은 자신의 이름을 건 믹스테이프 <Lil Peep : Part One>의 수록곡 ‘Star shipping’으로 세간의 반응을 얻어냈다. 그의 멜로디는 힙합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었다. 유명 음악 비평 잡지인 피치포크는 그를 ‘이모의 미래’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두운 달의 뒷면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던 그는 미국 투어에 더해 월드 투어를 준비했다. 쉬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을까. 투어 중에도 멈추지 않고 여러 장의 믹스테이프와 정규 앨범 <Come Over When You’re Sober pt.1>을 발매하며 성공 가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2017년 11월 15일, 월드 투어 그는 팬이 건넨 약을 먹고 몇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소파에 기대어 있었다. 평소에도 약에 취해 같은 자세로 잠을 잤기에, 동료들은 잠을 자는 줄 알고 있었고, 그를 내버려두었다. 결국 릴 핍은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의 우울에 세상이 물들었다
그가 얼굴에 남긴 아나키스트를 상징하는 ‘A’ 문양 때문일까, 이를 즐겨 사용하던 펑크 밴드 섹스 피스톨스의 베이시스트 시드 비셔스와 같은 나이인 21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제 막 떠오르던 신예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특히 힙합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줬던 그의 죽음이 통탄할 수밖에. 릴 핍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까, 세상이 우울함으로 물들었다.
릴 핍처럼 불안정한 감정을 주로 내세우는 주스 월드(Juice Wrld) 같은 신예 이모 래퍼들이 큰 인기를 끌었고, 한국에서도 우원재, 빈첸 등으로 대표되는 이모 래퍼가 우후죽순으로 나타났다. 그가 힙합 씬에 건넨 다양성이라는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
릴 핍 이전에도 이모 힙합이 존재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이모 힙합이라는 카테고리를 확립시켰기에 충분히 음악사에 남을 만한 아티스트다. 팝스타적인 인기를 끌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기억할 만한 천재 아티스트 릴 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