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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를 타고 등장한 뱀파이어, 플레이보이 카티

힙합 시대에 태어난 락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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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패션과 음악, 문화계는 록 음악을 향한 발걸음을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메인스트림을 유지하던 ‘힙합’에는 락의 사운드가 섞였고, 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에이브릴 라빈, blink-182 등의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2000년대에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팝 펑크’. 힙합에만 몰두했던 ‘머신 건 켈리(Machine Gun Kelly)’는 팝 펑크로 음악 노선을 틀었다. 이후 발매한 [Tickets to My Downfall]로 빌보드 200 앨범 1위를 달성했다.

더하여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던 포스트 말론과 한국의 애쉬 아일랜드도 랩스타보다는 락스타를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2020년을 전후로 힙합의 이미지 소모가 끝이 났다는 듯,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기타 사운드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록 음악의 부활을 기대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록 음악을 재현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그 사이에서 ‘펑크 정신’으로 똘똘 뭉친 진짜가 나타났다. 힙합을 연장전으로 이끌고 간 래퍼, 플레이보이 카티다.


이게 랩이야?

플레이보이-카티-래퍼

랩 음악이라 하면 정곡을 찌르는 가사, 정확한 발음, 속도감 있는 음악이 떠오른다. 그러나 카티의 랩은 달랐다. 똑같은 단어의 반복, 혹은 ‘what’, ‘ye’, ‘broke boi’ 같은 추임새만 주야장천 내뱉고, 자꾸만 흐느적거린다. 웅얼거리는 듯한 랩 스타일인 ‘멈블 랩’을 구사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의 음악을 처음 듣는다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을 터.

카티가 비트 위를 날아다니는 래퍼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목소리는 비트 안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하나의 음악으로써 요동친다.

그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해준 건 믹스테이프 [Playboi Carti]다.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12위에 올랐고, 수록곡 ‘Magnolia’는 핫 100 차트 29위에 안착했다. 성적만 보더라도 그가 젊은 세대를 대표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 

플레이보이-카티-래퍼

그로부터 약 1년 뒤, 정규 1집 [Die Lit]으로 돌아온 카티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사운드를 선보였다. 빌보드 200 3위를 하며 장르 팬과 대중성까지 잡은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그는 1집 앨범을 통해 자신의 음악이 무엇인지 제대로 각인시켰고, ‘멈블 랩은 곧 카티’라는 공식을 정립했다.

랩스타가 된 그의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는 미발매곡들의 유출과 함께 더욱 커졌다.

플레이보이 카티와 펑크

섹스 피스톨스는 기타를 잘 다루지 못해도 밴드를 만들어 활동했다. 밴드가 연주를 못한다니. 그들은 기교 있게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한다는 기존 체제에 당당하게 반항을 한 것이다. 펑크록을 원하는 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펑크 정신을 보여준 섹스 피스톨스. 반골들은 열광했고, 자연스레 펑크의 아이콘이 되었다.

“내 카테고리가 힙합이긴 하지만, 난 완전한 락스타라고”

-<Interview Magazine>, 플레이보이 카티

카티 역시 힙합 프레임에 저항하는 음악을 만들었다. 가사에 뜻이 담겨있어야 한다거나, 스킬로 승부하는 기존의 힙합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가사가 맞나 싶은 동어반복과 즐기면 장땡인 힙합 음악을 들려줬다. 이처럼 그의 일반적이지 않은 ‘힙합 음악’은 펑크 정신을 계승한다. 카티는 펑크 하면 생각나는 록 음악으로부터 펑크의 ‘저항 정신’을 가져왔다. 그가 자신을 ‘힙합 하는 락스타’라고 칭할 수 있는 이유다.

음악에서뿐만 아니라 그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에서도 펑크적 요소를 다수 발견할 수 있다. 믹스테이프 [Playboi carti]에서는 펑크룩의 대모,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작품을 걸쳤다.

플레이보이-카티-앨범
플레이보이-카티-비비안-웨스트우드

[Die lit]의 앨범 커버 역시 사진작가 ‘에드워드 콜버’가 펑크 공연에서 찍었던 유명한 사진을 오마주 한 것이다. 그는 힙합 씬에서 죽어라 펑크를 외치는 괴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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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보이-카티-에드워드-콜버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가 아니다.

2020년 12월 25일,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에 악마의 앨범 [Whole Lotta Red]가 발매됐다. 앨범은 기괴하고 파괴적인 사운드로 가득 차 있었다. 난생처음 듣는 굉음으로 가득 찬 앨범에 리스너들은 혹평을 쏟아냈다. 팬들은 그로부터 전작의 상위 호환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플레이보이-카티-whole-lotta-red

그러나 분위기는 재빠르게 뒤집혔다. 일렉 기타보다 윙윙거리는 신디사이저, 그리고 강렬한 베이스 사운드가 주는 ‘불쾌감’은 곧 사람들을 쾌락으로 물들였다. 

그는 이전에도 자신이 펑크임을 주장했는데, 마침내 이 앨범으로 보여주기 그 이상의 증명을 한 셈. 앨범명은 AC/DC의 [Whole lotta Rosie]를 떠오르게 하고, 앨범 커버는 펑크 팬 매거진 <Slash>를 오마주 했다. 그는 어정쩡한 흉내가 아닌 진짜 ‘카티식 펑크’를 들고 왔다.

플레이보이-카티-Slash

그는 켄 카슨, 이트, 디스트로이 론리 등의 카피캣들을 양산해 내며 ‘레이지(Rage)’라는 새로운 힙합 장르의 선구자가 되었다.

플레이보이 카티, 그리고 레이지 장르의 팬들에게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가 아닌 [Whole lotta Red] 탄생일이 됐다.

펑크의 허무주의를 즐기는 사람들

팬데믹 시기,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도시는 디스토피아의 실현을 우려했다. 길었던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젊은이들은 현재도, 미래도 거부하는 펑크의 허무주의 정신을 이어 받아 음악과 패션으로 시대를 표현했다. 

사람들은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목걸이를 원했고, 과거 락스타의 면모를 보이던 밴드의 음악들을 원했고, 커트 코베인의 찢어진 니트를 원했다.

미래를 위한 나의 행동이 덧없음을 느낄 때면, 더욱 강한 도파민을 찾으며 허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법. 

플레이보이-카티-래퍼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카티는 인간임을 포기한 듯, 뱀파이어의 모습으로 나섰다. 개인을 그저 사회의 부품으로 몰고 가려는 세상에게, “그래! 난 인간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인다. 카티는 [Whole Lotta Red]의 수록곡 ‘King Vamp’처럼 뱀파이어들의 왕을 자처하며 젊은 힙합 팬들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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