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몽키 매직, 몽키매직”
-‘몽키매직’, 이박사
누군가는 그를 두고 관광버스에서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즐겨 들을 고루한 음악가라고 할 수도 있다. 그의 음악을 ‘뽕짝’이라고, 트로트를 낮잡아 부르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안다. 신바람 이박사의 ‘테크노 뽕짝’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 그의 뽕짝은 트로트 하위 버전이 아닌, 엄연한 ‘장르’가 되었다.

관광버스 메들리? 네, 제 뿌리입니다
이박사의 뿌리는 두 가지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는 민요를 배웠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진짜 관광버스 가이드 출신이라는 것. 어릴 때부터 배웠던 이박사의 민요 실력은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이후에는 록 음악에 빠져 살다 뽕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관광버스 가이드 시절 그는 어떻게 하면 관광객들의 지루한 이동 시간을 즐겁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찾은 방법이 바로 ‘노래’. 그가 불러주는 노래에는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특별 소스가 있었다. 바로 ‘추임새’. “아싸, 좋아요”, “얼씨구” 등 민요 신동 출신 이박사는 노래 사이사이에 바쁘게 추임새를 넣으며 흥을 돋웠다.
그는 관광버스 가이드 사이에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한 음반 제작자의 눈에 들어온 그는 고속도로 메들리를 녹음했다. <신바람 이박사 뽕짝 디스코 메들리>는 가수 ‘김연미’, ‘진성’ 사이에서 빛나는 휴게소 베스트셀러였으며, 관련 업계에서는 하나씩 가지고 있는 테이프였다고.
이박사의 음악적 특징이라 하면 신이 난다는 것. 그의 이름 앞에 ‘신바람’이 붙는 이유다. 가만히 있는 게 죄책감이 들 정도로 신나는 빠른 리듬, 위트 있는 추임새는 그의 ‘테크노 뽕짝’을 전파하는 데 일조했다.
수익금은 기획자의 손에 모조리 들어갔다. 관광버스 일을 그만두고 알바와 월세살이를 전전하던 중, 그에게 또 한 번 더 큰 기회가 생겼다.
1세대 한류스타, 일본에 진출하다

일본은 ‘B급인 척하는 S급’ 아티스트 이박사를 알아봤다. 1995년, 당시 최고의 음반사 일본의 소니뮤직 관계자가 이박사를 스카우트했다. 당시 일본의 한 인디 레이블에서 수입해 팔던 이박사의 메들리 테이프를 듣고 기회를 봤다고. 90년대 일본 사람들이 ‘한국하면 뽕짝이죠’라는 소리를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는 일본 가수들이 꿈꾸는 무대, 당시 일본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었던 ‘부도칸(무도관)’에서 공연을 펼쳤다. 일본의 이름난 가수들도 쉽사리 부도칸에서 공연을 펼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박사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조용필 다음으로 부도칸에 오른 가수였다. 1996년, 일본 가요대상 신인상을 받았으며 6년 동안 일본에서 활동했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이박사의 과거를 수집하는 사람이 많다고.
일본에서 활동할 때 우리가 아는 ‘몽키매직’, ‘YMCA’, ‘영맨’ 등의 노래들이 나왔다.

한국인 이박사입니다
그는 일본에서 활동을 하면서도 일본어를 배우지 않았다. 무대에서 멘트를 할 때도, 방송에 나와서도 한국어만 썼다. 심지어 아리랑을 그렇게 밀고 나갔다. 그래서일까. 이박사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그와 대화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의 열성팬들이 많이 생겼다.

더 재밌는 건, 일본 최대의 제약업체 ‘긴쵸사’에서 CF 모델로 발탁되었을 때의 일이다. 90년대 일본의 TV 광고에서 이박사의 ‘강원도 아리랑’ 메들리가 쓰였다. 아리랑 멜로디에 ‘좋아좋아’를 외치는 이박사, 그는 일본에서 돈을 벌면서 한국의 문화까지 제대로 알린 셈이다.
이박사가 일본 밴드 고다이고의 ‘몽키매직’, 사이조 히데키가 번역해 인기를 끌었던 ‘영 맨’ 등의 음악을 모두 한국어로 다시 리메이크하여 불렀고, 일본인들은 언어를 불문하고 열광했다.
역수출된 한국인 이박사
90년대 일본 ‘뽕짝의 제왕’은 2000년대가 되어서야 한국에서 열풍이 불었다. 한창 ‘666-Amokk’, 가수 이정현의 음악에 맞춰 ‘테크토닉’을 추던 시대였다.
그에 발맞춰 이박사의 음악이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다. 물론 ‘엽기’라는 수식어가 그의 음악 앞에 붙었다. 그러나 인기는 대단했다. 이박사는 한국의 소니 뮤직과 함께 일본 데뷔 앨범 구성에 ‘스페이스 판타지’를 더해 한국 데뷔 앨범 [Space Fantasy]를 발매했다. 인터넷에서 떠돌던 음악이 정식 발매되자 곧바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스페이스 판타지’는 국내 1세대 테크노 뮤지션이자 얼마 전 한국대중음악상에서도 이름을 보였던 ‘가재발’과 함께했다. 본래 일본의 아티스트 집단 ‘메이와 텐키’와 이박사가 함께 만들었던 ‘나는 우주의 판타지’라는 곡을 리메이크 한 것이다.
고속도로 메들리 테이프부터 시작해 일본을 거쳐 고향인 한국에서까지 테크노 뽕짝의 선봉장이 된 이박사. 젊은이들의 상징 같은 공간인 홍대 및 여러 대학가에서 이박사의 음악이 흘러나왔고, 라이브 공연은 관객석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음악은 포기하지 않았다

음악인 이용석에게 자신의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을 신나게 만드는 건 행복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집 앞 나무를 다듬다가 다리를 크게 다쳤다. 계약되어 있던 광고, 공연을 모두 나갈 수 없게 되어 위약금을 모두 물어내야 했다고. 시련이 연속으로 찾아온 그는 가끔 TV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보였지만, 예전의 위상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품바, 각설이 단과 꾸준히 공연을 하러 다녔다. 관중이 없는 라이브 클럽에서도, 작업실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꺼지지 않은 열정을 계속해서 내뿜었다.

2022년, 아이돌 음악을 다수 프로듀싱했던 아티스트 250의 앨범 [뽕]이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되자 이박사가 한평생 일궈냈던 뽕짝은 인정받기 시작했다. 딴따라의 댄스곡이 아닌 음악으로.
하이퍼팝, 익스페리멘털 뮤직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는 요즘. 이박사는 전자음악에 한국의 얼을 제대로 담아낸 최초의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뽕의 맛을 느낀 젊은이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신바람 이박사.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70세가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