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로랑, 이제 망하는 줄 알았는데 커버이미지
fashion

생 로랑, 이제 망하는 줄 알았는데

안토니 바카렐로는 와일드카드였다

URL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공유해보세요!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2016년, ‘생 로랑’에 아주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생 로랑의 스타일, 로고 심지어 브랜드의 이름까지 바꾸며 생 로랑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던 에디 슬리먼이 브랜드를 떠났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사람들이 생 로랑을 떠올릴 때면, 우아하고 정교하게 떨어지는 실루엣의 검은 슈트보다 그의 락 시크 스타일이 떠오를 정도였으니. 그렇게 강렬한 발자국을 남기고 떠난 에디 슬리먼의 바통을 넘겨받을 적임자가 누구일지는 패션계의 큰 관심이었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NEW YORK TIMES

‘안토니 바카렐로’. 생 로랑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그의 이름이 호명됐다. 3년 동안 매출을 두 배 이상 올려놨던 전임자인지라, 안토니 바카렐로가 걸어갈 길에는 사람들의 기대와 걱정이 공존했다. 에디 생 로랑의 골수 팬들이 드글드글한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일각에서는 바카렐로가 그의 유산만 잘 이어나가도 반은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괜한 걱정을 했다.

아주 간단하게 자기소개하겠습니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안토니 바카렐로,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로스쿨 과정도 1년 동안 거쳤다. 그러나 패션과 예술에 큰 흥미를 보였던 그는 패션 학교 진학해 국제 패션 콩쿠르에서 1등, 좋은 평가를 받으며 패션계에 진입했다.

이후 모피 디자인으로 칼 라거펠트와 함께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눈에 띄어 브랜드 ‘베르수스 베르사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까지 빠르게 승진하기도 했다. 여기서도 눈에 띄는 성적을 보이며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고.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섹시함이 돋보이는 비대칭 디자인, 관능적인 이브닝드레스로 기네스 팰트로, 제니퍼 로페즈 등 많은 여성 셀럽들이 안토니 바카렐로의 옷을 사랑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바카렐로는 남성복보다는 여성복에서 조금 더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펜디, 베르수스 베르사체를 거친 그의 경력은 어쩌다 생 로랑에 새롭게 발탁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다 지워버리겠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이브 생 로랑, 톰 포드, 스테파노 필라티가 만들어놓은 유산을 지워버리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생 로랑에 구축해 낸 에디 슬리먼. 그는 우아한 럭셔리 스타일보다는 컬트적인 요소들에 집중했다. 바카렐로는 그가 지운 이브 생 로랑 재건에 돌입했다.

SNS에 남아있는 에디 시절의 작업물은 모두 삭제. YSL 로고의 부활. 그리고 ‘이브 생 로랑의 유산’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기대와 걱정을 한몽에 받은 바카렐로의 첫 생 로랑 컬렉션 17S/S부터 한동안 종적을 감춰 왔던 YSL 로고가 등장했다. 생전 이브 생 로랑이 검은색의 검은색 사랑을 다시 보는 듯한 블랙의 향연이 이어지면서 성공적인 생 로랑 데뷔를 이뤄냈다. 전임자의 와일드함을 조금 내려놓으면서도 과거와 현재를 잘 요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에서는 이전의 디자인을 답습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였다.

안토니 바카렐로의 생 로랑, 시작합니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에디 슬리먼의 생 로랑이 멘즈 웨어를 중심으로 주목받았다면, 바카렐로의 생 로랑은 그 반대다. 이전부터 남성보다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탄탄한 팬층을 쌓아왔었기 때문. 바카렐로 역시 직접 여성복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이는 그가 피에르 베르제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바카렐로는 ‘르 스모킹’을 다시 한번 패션계에 제대로 각인시켰다.

‘르 스모킹 슈트’가 여유로운 실루엣으로 부활했다. 생전 이브 생 로랑은 남성복의 전유물이었던 턱시도를 ‘르 스모킹’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선물했다. 당시에는 여자가 턱시도 바지를 입는다는 개념부터 희미했다. 르 스모킹 슈트는 여배우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곧 여성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르 스모킹은 이브 생 로랑의 상징이다. 물론 에디 슬리먼 역시 르 스모킹 룩을 선보이며 과거를 재해석했지만, 그의 주 종목은 스키니 데님을 필두로 한 락시크였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연구 성과 발표합니다

바카렐로의 런웨이는 달라졌다. 이제 생 로랑을 대표하는 것은 ‘락시크’가 아니라 ‘클래식’. 파워 숄더와 오버사이즈의 테일러링 자켓이다. 근본적인 우아함을 다시 생 로랑의 DNA에 주입시켰다.

제대로 잡힌 어깨 각에 똑떨어지는 실루엣, 기가 막힌 여성복과 남성복의 경계 활용. 이브 생 로랑의 디자인 정신을 계승하는 듯하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남성복의 전유물이었지만, 여성들을 위한 아이템으로 선보인 ‘르 스모킹 턱시도’와 ‘사파리 자켓’, ‘허벅지까지 오는 부츠’, ‘슬림한 바지’, 시스루 상의 등 바카렐로가 유연하게 선보이고 있는 많은 것들이 60-70년대 이브 생 로랑을 대표하는 것들이라고.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특히 23FW부터는 생 로랑이 테일러링 기반의 의상들을 유행시켰다고 생각할 정도로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23FW 여성복 컬렉션, 남성복에서 주로 사용되는 파워 숄더,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슬림한 실루엣을 고루 보여줬다. 남성복 컬렉션에서 터틀넥 드레스를 선보이는 과감함도 인상 깊었다. 잘 어울리는 게 신기할 정도로 바카렐로의 선타기는 굉장하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24SS 남성복 컬렉션, 역시나 바카렐로의 전매특허인 오버사이즈 자켓으로 시선을 끌었다. 남성복 컬렉션이지만 그는 ‘여성이 남성의 옷을 입었을 때의 쉐입에서 시작됐다’라고 언급하며 여성복과 남성복의 모호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성복에 주로 사용되는 실크, 시폰 등의 소재도 잘 어우러지도록 사용했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24SS 여성복 컬렉션은 남성 파일럿이 대부분이었던 1928년, 여성 파일럿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아멜리아 에어하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지난 시즌까지 꾸준히 보여 온 슈트대신 이브 생 로랑부터 이어져 온 아이템인 ‘사파리 자켓’을 주력으로 내놓았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쇼에는 이브 생 로랑의 오랜 뮤즈 ‘카트린 드뇌브’가 나타났다. 브랜드를 만들었을 때, 이브 생 로랑의 첫 고객이 바로 카트린 드뇌브였다. 하우스의 시작부터 모든 것을 지켜봐 온 그녀 앞에서 이브 생 로랑을 오마주한 컬렉션을 선보인 셈. 사파리 자켓으로 이브 생 로랑과 그녀, 그리고 브랜드에 대한 존경을 제대로 표현했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24FW, 25SS. 최근 패션 위크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브랜드는 바카렐로의 생 로랑이지 않을까.

2024년 3월, 패션계는 바카렐로의 24FW 생 로랑 런웨이를 보고 환호했다. 쇼가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젊은 이브 생 로랑이 재림했다고 입 모아 말했다. 여유롭게 늘어진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 클래식한 프렌치 뿔테안경으로 아카이브 재해석 그 이상의 생전 이브 생 로랑의 실제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여성복에서도 시스루 패션을 보여주며 이브 생 로랑의 계승자가 바로 바카렐로 본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25SS 생 로랑 여성복 컬렉션에서도 메인 아이템은 슈트였다. 헤어스타일까지 남성적인 슈트였다. 80년대에 자주 보였던 정장 스타일로, 그 시절 드글댔던 여피족을 떠오르게 하는 컬렉션이었다. 투병생활을 마치고 런웨이로 복귀한 벨라 하디드의 시크한 모습은 생 로랑의 패션 위크 피날레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바카렐로의 생 로랑에서 남녀 구분은 의미가 없다. 남성들은 여성복을, 여성들은 남성복을 보고 스타일링을 참고해도 될 정도로. 그러나 각 성별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놓치지 않는다. 브랜드 창립자 이브 생 로랑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블랙, 클래식, 그리고 이브 생 로랑의 향연. 에디 슬리먼이 가고, 무너질까 걱정했던 생 로랑은 안토니 바카렐로를 통해 완벽한 도약에 성공했다.

이브생로랑-생로랑-안토니바카렐로-에디슬리먼-르스모킹-벨라하디드-24FW-25SS-글로우업-매거진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