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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을 앞에 두고 신발만 바라보는 밴드

아름다운 노이즈의 왕과 여왕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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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원하는 ‘소음’을 내기 위해 공연이 시작됐는데도 기타를 튜닝하고, 준비만 한다. 완벽하게 준비가 끝났는지, 공연이 시작되었고, 팬들은 열광의 스로틀을 슥 당겼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기타를 치던 손을 멈췄다.

돈 내고 공연 보러 갔더니 무대 매너 따위는 갖다 버린 이 밴드. ‘맥 커터’라도 공연을 보러 가주는 팬들의 눈빛은 무시하고, 신발만 보며 연주를 하는 마이웨이 주인공은 바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마이-블러디-발렌타인-슈게이징


“기타로 할 수 있는 건 이제 다 나왔다”


섹스 피스톨스, 라몬즈 같은 펑크 음악에 빠져있던 케빈 실즈에게 드러머인 친구 콜름 시오소익이 밴드를 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케빈 실즈는 기타도 제대로 칠 줄 몰랐지만, 멤버들을 모집해 공포 영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1981)의 제목을 따와 밴드를 일단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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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청년들은 한창 테크노, 하우스 등의 전자 음악과 레이브파티를 즐기면서 기타로 낼 수 있는 사운드는 다 나왔다고 말했다. 기타 음악의 종말을 선언하는 듯했다. 그러나 케빈 실즈는 보란 듯이 새로운 사운드를 들고 와 밴드 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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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게이징 붐은 온다.


슈게이징(Shoegaze) 음악은 기타 이펙터를 층층이 쌓아 만들어진 ‘노이즈’가 특징이다. 어느 날 케빈 실즈는 슈게이징의 선구자라 불리는 ‘더 지저스 앤 매리 체인’의 ‘Psychocandy’를 듣고, 이거다!라는 느낌이 왔다. 슈게이징으로 노선을 틀었고 보컬 빌린다 부처가 밴드에 참여하며 우리가 아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새롭게 탄생했다. 

마이-블러디-발렌타인-슈게이징


노이즈 섞인 기타 사운드에 몽환적인 목소리를 처음으로 담아낸 <Isn’t It Anything>은 슈게이징 붐의 시작을 알렸다. 이 앨범에 영향을 받아 슬로우 다이브, 러시 등의 슈게이징 밴드들이 속속히 나타났다. 오아시스가 속한 레이블로 유명한 ‘크리에이션 레코즈’와 만나 곧장 다음 앨범을 준비했다.

너넨 돈만 나가는 밴드야


케빈 실즈의 지독한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새로운 앨범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약 3년간 57대의 기타, 43대의 앰프, 18명 이상의 엔지니어 등 완벽한 사운드를 내기 위해 폭주하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덕분에 회사는 어마무시한 돈과 시간을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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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기다림 끝에 역사적인 앨범 <Loveless>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쌓이고 쌓인 노이즈가 일으킨 불협화음 사이로 나오는 몽환적인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부조화가 만들어낸 조화가 꾹꾹 담긴 <Loveless>는 평단의 엄청난 극찬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슈게이징하면 떠오르는 하나뿐인 전설의 앨범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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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나가는 밴드라는 타이틀이 참으로 어울렸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다. 평단의 극찬을 받았지만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상업적으로 실패했으니 말이다. 결국 크리에이션 레코드와는 이별했고, 유니버설 산하의 아일랜드 레코드에 새 둥지를 틀게 된다. 케빈 실즈의 완벽주의는 어디 가지 않았고, 21년 만에 <m b v>가 나타났다. 요즘 앨범 안내는 아티스트들과는 차원이 다른 공백 기간이다.

우리 음악은 시끄러우니 귀마개를 끼세요

2018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나타났다. 그들이 연주를 시작하기 전, 전광판에는 이런 경고 문구가 나타났다.

“오늘 공연은 노이즈가 강한 사운드로 귀에 무리가 올 수 있습니다.
앞쪽에 위치한 관객분들은 이어 플러그를 받으신 후 착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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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원하는 사운드를 내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장비들을 들고 다닌다. 소음을 ‘쌓는다’는 음악의 특징 때문에 이들이 공연할 때면, 비행기가 이륙하는 정도의 굉음을 낸다. 그래서 그들이 공연장에 나타날 때면 행사 요원들은 귀마개를 관객들에게 나눠준다.

슈게이징 붐이 올까?


2021년 ‘파란 노을’의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라는 앨범이 외국 힙스터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자 다시금 슈게이징이 떠올랐다. 혁오의 현재 기준 마지막 앨범인 <사랑으로> 역시 슈게이징을 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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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과 아름다운 멜로디가 아닌, 불협화음과 불규칙한 소리들로 ‘새로운 음악’을 정립해낸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꿈결같은 분위기는 그들의 뭣 같은 무대매너도 잊게 만든다. 이지 리스닝이 난무하는 시대 지쳤다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아름다운 소음을 들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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