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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지갑이 러닝으로 이끌었다

러닝붐은 1970년대 미국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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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건 내 몸인데, 정작 내 지갑이 나보다 홀쭉해지고 있다. 그러나 돈 드는 스포츠는 하기 힘들어진 게 현실. 끝없이 오르는 생활물가에 스포츠 트렌드도 변화했다. 지금 어떤 운동이 유행인가를 누군가에게 물어본다면 모두가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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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면 어때서. 재밌으니까 뛰는 거야’라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에디터는 ‘왜?’ 중독자라 이런 거 못 참는다. 당신이 러닝에 빠진 이유가 홀쭉해진 지갑이라는 것, 그리고 1970년대에 이 현상에 대한 힌트가 있다는 것을 찾았다.

너 얼마 전에는 골프채 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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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가장 급격하게 수요가 늘어난 스포츠는 ‘골프’였다. 재무제표는 머리 아프니까, ‘인기의 정도’를 알아내기 위해 대한민국 대표 골프 주식 ‘골프존’의 주가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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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네이버 증권

코로나 대폭락 이후 2020년은 무난하게 흘러갔지만 2021년의 상승폭은 그저 눈에 띄는 정도가 아니다. 1년 동안 약 3배의 상승폭을 자랑한다. 1월 29일 종가 기준 65,000원에서부터 12월 30일 종가 기준 174,800원이다.

2021년은 골프의 해라고 봐도 무방했을 정도로 필드 인증, 스크린골프장 내기 인증으로 SNS 게시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6만 원대의 주가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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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촉진시키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1년 내내 풀었던 돈은 2022년부터 회수하기 시작했다. 경기 침체가 왔고 한국은 역성장을 기록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이 골프를 친다는 말은 괜한 속설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 이와 동시에 골프 관련 종목들의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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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랠리 덕분에 안 오른 종목이 없었다고? 지금 한창 유행인 ‘온 홀딩’과 브랜드 호카를 소유한 ‘데커스 아웃도어 코퍼레이션’은 골프가 유행했던 그때만큼의 주가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 아식스도 마찬가지.

돈이 없어 밥 먹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데 유행처럼 번졌던 ‘플렉스(Flex)’를 유지할 턱이 있겠는가. 자연스레 급부상했던 취미 생활, 돈 드는 운동인 골프에서 사람들은 멀어졌다.

신발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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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새로운 취미 생활을 찾아 나섰다. 러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운동화 하나만 있으면 운동하면서 한강도 만끽할 수 있는 운동. 밥만 먹고살아도 지갑이 홀쭉해지는 요즘, 달리기만큼 가성비 좋은 운동도 없다고.

우연일까. 러닝을 시작했더니, 다른 사람들도 하나같이 달리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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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상황이 안 좋을 때 달리기의 인기가 급증한 것은 처음 일어난 일이 아니다. 1970년에 미국에서 지금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미국은 60년대부터 시작한 베트남 전쟁, 금리 인상, 오일쇼크 등 기나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다사다난했던 경제 불황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 경제사에서 경기가 가장 나빴던 기간 중 하나로 꼽히는 시대다.

그때, 미국에 일어난 것이 ‘러닝 붐’이었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1979년 이 현상을 정리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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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만 있다면 누구나 운동선수가 될 수 있다”
– 빌 바우어만

처음에는 일반인들이 길거리를 달리는 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밤에 조깅을 하면 경찰들의 의심까지 받는 이상한 취미 생활로 받아들였지만, ‘빌 바우어만’이라는 육상 코치가 조깅에 대한 인식을 개선했다.

빌 바우어만은 그의 제자 ‘필 나이트’의 제안을 받아 고품질의 신발을 공급하자는 목표로 ‘나이키’를 공동 설립했다.

나이키와 온은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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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나이키는 주식 상장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에 진행된 기업공개가 나이키의 성장세와 인기를 증명하는 셈이다.

조깅을 괴짜들의 운동, 혹은 운동이라고 취급하지도 않던 시기에 러닝화를 주력으로 밀었던 나이키는 이에 대응하지 않았던 아디다스의 전성기에 마침표를 찍게 만들었다.

지금 가장 핫한 운동화, ‘온러닝’과 ‘호카’가 나이키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은 최근 떠오르는 스니커즈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는데, 주력 제품이 ‘러닝화’인 것이다. 나이키와 온러닝, 호카 모두 경제 위기론이 팽배할 때 나타난 러닝 붐으로 기업의 급격한 성장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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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 상황은 어떨까. 나이키는 최근 1년 동안 약 30%의 하락을 기록했다. 2021년 이후 하락세는 계속되고 있다. 그에 비해 ‘온 홀딩(ONON)’은 11월 29일 기준, 1년 동안 약 95%, 호카를 보유한 ‘데커 아웃도어(DECK)’는 11월 29일 기준, 69%의 상승을 기록하며 러닝의 인기와 함께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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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구글

아디다스가 못 본 조깅, 러닝 시장을 파고들었던 나이키처럼 신생 브랜드들이 러닝이 유행하는 이 시점에 성공적으로 나이키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왔다.

러닝 크루의 선택을 받지 못한 나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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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위를 점령했던 나이키의 스우시 모양이 모습을 감춘지 꽤나 오래되었다. 나이키가 자체 온라인 스토어를 키우기 위해 아마존과의 계약 중단, 팬데믹 당시 온라인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시행했던 디지털 혁신이 패착의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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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이키는 그래도 나이키지”일까. 사실 개인적으로는 디자인에 대한 혁신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헤리티지의 디자인을 이어나가고 싶은 것인지, 인기를 얻었던 제품으로 남은 꿀을 몽땅 먹고 싶은 것인지. 비슷한 디자인에 질린 사람들이 점차 떠난 것으로 추측된다. 이미 디지털화로 접근성이 떨어진데 더해 나이키 마니아들이 가진 제품의 희소성을 떨어뜨리고, 운동화 기술 혁신에도 소홀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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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러닝 크루의 회원들은 익숙한 나이키 디자인보다 틈새를 파고 들어온 ‘온러닝’의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성을 선택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아니 홀쭉해진 지갑이 진작에 예견되었던 ‘러닝 트렌드’. 그에 따라 패션 시장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골프 웨어가 아닌 러닝 웨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새로 짜여진 판에서 러너들은 나이키가 아닌 새로운 브랜드를 선택했다.

나이키가 갖고 있었던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는 새로운 왕좌에 넘겨질 것인가. 나이키가 어떤 혁신과 매력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을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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