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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에 돈 쓰는 이유, 스웻셔츠의 아버지 ‘챔피온’

뭉툭하고 못생겨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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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주얼하게 챔피온에 대해 알아보자. 100년이 넘는 역사? ‘니커보커 니팅 컴퍼니’라는 최초의 브랜드 이름? 물론 이런 정보도 좋다. 하지만 오늘은 좀 더 현실에서 ‘쓸모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그놈의 90년대 챔피온 스웨트셔츠가 뭔지, 구멍 나고 찢어진 50년 된 스웨트셔츠가 왜 100만 원이 넘는지. 어떤 가치를 가졌길래 패션 마니아들이 그리도 열광하는지 알아보자. 


“아니 옛날에는 니트를 입고 뛰었다니까?”

현대인들은 스웨트셔츠를 패션으로 소비한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 운동만 하는데도 스웨트셔츠를 입는다. 하지만 스웨트셔츠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던 1920년대에는 운동할 때만 입는 체육복이었다. 일상에서 입으면 운동선수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스웨트셔츠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운동선수들은 니트 방식으로 제작된 양모 스웨터를 입고 뛰었다. 무겁고 불편한 스웨터를 입고 뛰었으니, 가볍고 땀 흡수도 잘 되며 따뜻하기까지 한 스웨트셔츠가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미식축구 선수였던 벤자민 러셀 주니어가 개발한 스웨트셔츠는 금방 축구 선수부터 육상 선수, 야구선수 등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운동선수들로부터 뜨거운 지지와 환호를 받았다. 챔피온이 최초 아니었나?

아니다. 러셀이 최초다. 다만 일반에 스웨트셔츠를 빠르게 확산시키고, 대중화하는데 크게 기여한 브랜드는 챔피온이 맞다.

챔피온이 남달랐던 이유는 직접 개발한 특별한 기술 덕분이다. ‘리버스 위브(Reverse Weave)’라는 독특한 직조 방식 덕분에 챔피온은 러셀보다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리버스 위브 기술이 크게 특별하다고 볼 수 없다. 그저 원단을 두고 자르는 방향을 옆으로 돌렸을 뿐이기 때문이다. 

“엥? 원단을 옆으로 돌리면 뭐가 좋은데?” 분명 장점은 있다. 세탁했을 때 수축되는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고, 입을수록 좌우로 늘어나서 실루엣이 망가지는 걸 방지해 준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땡큐지만, 공급자 입장에서 리버스 위브 방식을 고수하는 건 로스율이 높기 때문에 어려운 선택이다. 

하지만 챔피온은 높은 품질의 스웨트셔츠를 제공하기로 결심했고, 효과는 분명했다. 20세기를 상징하는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올 타임 레전드 복서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미국의 미남 배우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등 시대의 아이콘들이 즐겨 입을 정도로 인정과 인기를 얻었기 때문.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었으면 당시의 스웨트셔츠들이 현재까지도 중고장터를 통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겠는가. 빈티지 가격이 높은 이유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역사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버렸다. 그래도 가볍게라도 사전 지식을 미리 알고 넘어가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6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 판매됐던 챔피온 빈티지 스웨트셔츠는 부르는 게 값이다. 물론 중고장터의 시장원리에 따라 연필 한 자루도 100만 원에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100만 원짜리 연필은 절대로 팔리지 않는다.(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반면에 빈티지 챔피온 스웨트셔츠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 산다.수요와 공급, 시장의 법칙

단순하게 생각해서 빈티지 챔피온 스웨트셔츠가 비싼 이유는 적은 공급량에 있다. 지금으로부터 최소 30년, 많게는 50년 전에 제작되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됐던 스웨트셔츠가 멀쩡할 리가 없고, 또 그만큼 많이 버려졌다. 판매할 수 있는 퀄리티의 빈티지 스웨트셔츠 물량이 적은 이유다. 그리고 공급이 수요보다 적으면 가격 상승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뭉툭하고 못생겨서 좋아요

챔피온이 망했는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 꾸준히 스웨트셔츠를 비롯한 다양한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버질 아블로의 파이렉스 비전, 대한민국의 슈프림 ‘디스이즈네버댓(Thisisnverthat)’ 등 날리는(?) 타 브랜드와의 협업도 진행하며 치열한 패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원한다면 언제든 공장에서 갓 나온 챔피온 리버스 위브 스웨트셔츠를 구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가격도 10만 원 안쪽으로 대부분 구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차별점은 여기서 다시 한번 발생한다. 요즘 챔피온이 출시하는 스웨트셔츠들은 과거의 제품들과 실루엣부터 디자인, 소재까지 모두 다르다. 최신 버전이 훨씬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됐고, 그만큼 입었을 때 실루엣도 예쁘게 떨어진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더 이쁘다고?” 맞다. 빈티지 챔피온 스웨트셔츠는 요즘 것들보다 훨씬 뭉툭하고 못생겼다. 머리 구멍은 뚫으면 그만

과거 챔피온은 하나의 원단으로 옷을 만든 후에 원통으로 머리 구멍을 뚫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헛웃음이 나오는 방식이다. 어깨라인부터 팔 라인, 넥 라인까지 모두 디자인의 하나로 고려되는 세상이기 때문. 하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모름지기 스웨트셔츠란 ‘대충 막 입는 옷’이었기 때문에 제작 방식도 얼렁뚱땅(?)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빈티지 챔피온 스웨트셔츠의 실루엣은 굉장히 독특하다. 어깨라인, 팔 라인이란 것 없이 직각으로 쭉 뻗은 팔, 일자로 쭉 내려오는 몸통 라인, 앞뒤 구분이 안될 정도로 굴곡이 없는 넥 라인까지. “아니 이게 옷이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입으면 더 이상하다, 하지만..

“그래도 입으면 좀 다르지 않겠어?”라는 생각은 빈티지 챔피온에 대한 모독. 오히려 독특한 실루엣은 실착했을 때 더 밝게 빛난다. 

일자로 쭉 뻗은 어깨와 팔 라인 덕분에 붕 떠서 걸쳐진 느낌이 들고, 원통으로 뚫어버린 넥 라인 때문에 입었을 때 등이 시원하게 노출된다.(앞뒤가 똑같은 깊이감을 가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빈티지 러버들은 챔피온의 이러한 투박한 실루엣을 사랑한다. 그리고 필자 또한 챔피온의 불편하고 딱딱한 조직감과 실루엣을 애정 한다. 하지만 이유를 말하라면 굉장히 어렵다. 거의 모든 면에서 현행이 좋기 때문. 정말 꺼내고 싶지 않은 단어지만 어쩔 수 없다. 아마도 우리가 빈티지 챔피온을 아끼고, 높은 가격에도 소비하는 이유는 ‘감성’ 때문이지 않을까? 다름의 가치, 자기만족

필자는 빈티지에 큰돈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감성과 자기만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60년대, 70년대, 90년대 챔피온 스웨트셔츠를 입는다고 해서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길을 지나가다가 나의 70년대 챔피온 스웨트셔츠를 보고 “어머, 저거 70년대에 챔피온이 출시했던 빈티지 리버스 위브 스웨트셔츠 아니야? 컬러는 근본 헤더 그레이잖아! ”라며 놀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패션에 관심이 많은 다른 친구들조차 목덜미에 가려진 택을 꺼내보기 전까지는 이게 현행인지, 70년대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몸에 감겨있는 옷의 정체를. 그리고 남들과 절대로 겹칠 일 없는 원 앤 온리 아이템을 입고 있다는 만족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것도 사보고, 저것도 사본 사람들이 끝에는 결국 빈티지를 찾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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