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에 파타고니아의 설립자인 이본 쉬나드가 내린 결정을 잊을 수 없다. 이본 쉬나드와 그의 일가는 회사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 지분의 가치는 30억 달러, 한화로 약 4조 2천억 원.
그리고 이본 쉬나드는 평생을 바쳐 일궈낸 파타고니아의 전체 지분을 ‘지구의 환경 보호’를 위해 기부했다.
파타고니아의 탄생
이본 쉬나드는 파타고니아를 설립하기 전부터 자연과 환경을 사랑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산에서 보냈고, 암벽등반을 즐기며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돈이 필요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이본 쉬나드는 결국 1973년에 아르헨티나와 칠레 사이에 위치한 지역의 이름을 딴 기업 ‘파타고니아(Patagonia)’를 설립했고, 암벽을 오를 때 사용되는 못인 ‘피톤’을 제작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피톤은 쉽게 망가져서 재사용이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만든 피톤은 튼튼했고, 여러 번 재사용할 수 있었다. 등반가들 사이에서 금방 입소문이 퍼져 이본 쉬나드의 피톤은 사랑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본 쉬나드의 튼튼한 피톤은 얼마 못 가 자취를 감췄다. 파괴하고 싶지 않아
그가 갑자기 돈 벌어다 주는 피톤 사업을 중단한 이유는 환경에 가는 피해 때문이었다. 여느 날처럼 등반을 위해 산을 찾았던 이본 쉬나드, 그는 자신이 만든 피톤으로 인해 파괴된 암벽을 마주했다. 자연은 그에게 친구이자 집이었다. 그가 받은 충격은 마치 상처 입은 친구, 혹은 무너진 집을 보는 것과 같았을 것.
그는 즉시 피톤 판매를 중단했다. 파타고니아의 매출 절반 이상이 피톤 판매로 채워지고 있었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개인적인 이득보다 자연이 더 소중했다. 파타고니아 정신의 탄생
피톤 사건은 이본 쉬나드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쩌면 이 사건을 통해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파타고니아의 정신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후로 파타고니아는 피톤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신제품을 개발했다. 이름하여 ‘알루미늄 너트’, 이 제품은 피톤으로 인해 이미 발생한 암벽의 틈 사이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사용됐다. 다행히도 알루미늄 너트는 피톤 못지않게 활용도가 좋았고, 파타고니아는 자연보호와 매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든다’
이후로 파타고니아는 아웃도어 시장을 공략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이본 쉬나드와 파타고니아는 장비를 넘어서 의류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당시에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옷을 만드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한 벌의 옷을 만들기 위해 낭비되는 자원은 다시 한번 이본 쉬나드를 열받게 만들었다.
그는 먼저 의류 생산으로 인해 발생되는 환경 파괴의 범위를 파악했다. 그의 눈에 띈 소재는 폴리에스테르와 코튼이었다. 유기농 면
당시 미국은 목화 재배를 위해 농약을 많이 사용했다. 대량생산을 위한 선택이었다. 농약은 독성물질이다.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존재. 1996년, 이본 쉬나드는 파타고니아 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모든 코튼 소재를 100% 유기농만을 사용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 약속은 2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신칠라(Synchilla)
내구성이 강해서 의류 제작에 많이 사용되는 폴리에스테르 소재는 많은 유해 물질을 배출한다. 석유를 사용해서 제작되기 때문. 이에 이본 쉬나드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폴리에스테르 사용’이라는 규칙을 과감하게 부쉈다.
파타고니아는 석유를 대신할 방법을 연구했다. 그렇게 버려진 페트병과 섬유를 결합해서 새로운 소재 ‘신칠라(Synchilla)’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재킷을 구매하지 마세요’
이후로 파타고니아는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매출의 규모가 커지는 것과는 관계없이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의 원칙은 변함없이 유지됐다.
새로운 디자인을 찾고, 트렌드를 이끌며 매출을 만들어내는 일은 패션 브랜드의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매 시즌 새롭게 만든 제품들을 최대한 많이 판매하기 위해 온갖 광고를 내보낸다. 하지만 파타고니아는 광고도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다.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에 진행됐던 ‘Dont Buy This Jacket’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파타고니아는 자사 브랜드의 자켓 사진과 함께 ‘이 재킷을 구매하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크게 적힌 광고를 내보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광고로 인해 파타고니아의 매출은 상승했다.
후에 이본 쉬나드는 “그냥 문장 그대로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재킷을 구입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길 바랐어요. 만약 구입한다면 평생 보증이 되고, 망가지면 수선할 수 있고, 수명이 다하면 재활용될 수 있는 제품을 사라는 솔직한 메시지였어요. 그 메시지가 정말 ‘진짜’이기만 하면 되고, 우리는 그 메시지에 부응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죠. 이것이 새로운 룰을 만드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봐요”라며 광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내가 없어도 파타고니아의 정신은 유지된다’
이본 쉬나드는 1938년생이다. 2024년이 된 지금, 그는 86살이다. 경영에서 물러날 나이가 된 것. 그는 끝까지 다른 기업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경영에서 물러났다.
이본 쉬나드는 자기가 없어도 파타고니아가 계속해서 환경보호를 위해 힘쓰는 기업으로 남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우선 의결권이 있는 파타고니아의 주식 2%를 전부 ‘파타고니아 퍼포즈 트러스트’로 양도했다. 이들은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핵심적인 부서로 이본 쉬나드와 파타고니아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남은 98%의 의결권이 없는 주식은 전부 ‘홀드패스트 컬렉티브’로 양도했다. 이들은 파타고니아로부터 받는 배당금을 운용하며, 자연을 보호하는 환경단체를 지원하는 활동을 펼친다.
의결권이 있는 2% 주식과 의결권이 없는 98% 주식까지 모두 넘긴 이본 쉬나드, 한마디로 그는 회사 전체를 환경을 위해 기부한 것.
이본 쉬나드의 결정은 기부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는 미국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30억 달러 가치의 대기업이 상장하지 않는 이유
이본 쉬나드는 파타고니아가 추구하는 가치와 직원들을 지키기 위해 주식시장에 기업을 공개하지 않았다. 기업공개를 진행해서 상장 주식이 될 경우, 어쩔 수 없이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운영되며 기존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ESG 경영의 원조
이본 쉬나드와 파타고니아는 환경과 사회, 지배 구조를 생각하는 ESG 경영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전부터 ESG 경영을 실천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닌, 원해서 실천하는 원조 ESG 경영을 보여줬다.
그들의 활동은 파타고니아를 넘어서 다른 기업들에도 큰 영향을 줬다. 기존의 개념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즐겼던 ‘진정한 서퍼’ 이본 쉬나드. 그의 정신을 되새기며 파타고니아 신칠라 자켓을 구매해서 수선하고, 고치며 평생 입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