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나 클라크의 <Time As We Know It>
“삶은 시간순으로 흘러가지만 정작 인간에게 중요한 건 각자의 주관적인 시간표다” 사진가 마르나 클라크는 사진집 <Time As We Know It>을 통해 사랑하는 이와 함께 늙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했다. 연인인 이고르와 함께한 사진집 <Time As We Know It>에서 그녀는 노화한 신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친밀감 그리고 그 시간들을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적나라하게 담아내며 많은 이들의 ‘노화’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놓았다. 어린 시절부터 신체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고 밝힌 그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몸 상태를 온전히 받아들였다는 것은 아름다운 사진 한 장 한 장에서 온전히 느껴볼 수 있을 것.
사진집에도 등장하는 그녀의 연인 이고르와 그녀가 만난 건 그녀가 62세, 그가 73세였던 때다. 그녀는 삼각대를 세워놓고 이고르와 함께 서서 시간을 기록했고 어떤 때는 이고르가 눈치채지 못할 때 몰래 셔터를 눌렀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끝맺음의 존재를 겸허히 받아들인 마르나 클라크. 2022년 8월, 연인인 이고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녀는 기록하는 행위를 지속해오고 있다. 이고르가 떠난 이후 혼자 남겨진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고.
전몽각의 <윤미네 집>
카메라를 켜고, 셔터를 누르고, 필름을 꺼내는 과정까지 모든 사진작가들의 루틴은 동일하다. 하지만 결과물 속에 녹아드는 감정의 밀도와 양은 다르다. 필자는 그 차이가 뷰파인더 너머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전몽각의 <윤미네 집>은 딸 윤미가 갓난아기였던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 집을 나가는 순간까지를 기록한 사진들을 엮어 만든 사진집이다.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윤미를 그리워하며 26년 동안 찍어 둔 필름 뭉치를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 이 사진집의 시작.
“그저 낳은 이후로 안고 업고, 뒹굴고 비비대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간지르고 꼬집고 깨물어 가며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를 아기침대에 넣어두고 시간 맞춰 우유병을 물려주는 미국이나 구라파의 그런 식과는 사뭇 달랐다.”
작가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 문단은 <윤미네 집>을 관통하고 있다. 전쟁의 후유증과 한국의 진한 ‘정’이 공존하던 6-70년대를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사진들은 이 시대에 느낄 수 없는, 그렇지만 이 시대와 어딘가 닮아있는 묘한 감정을 안겨줄 것. 윤미가 없는 윤미네 집에 남아 지난날을 추억하던 아버지의 손길을 경험하고 싶다면 90년대 처음 출간된 이후 20년 만에 복간된 <윤미네 집>을 구매해 보도록 하자.
박찬욱의 <너의 표정>
사진과 영화 그리고 인생의 공통점은 뭘까? 어디를 바라보고 담아낼 것인지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영화감독이지만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찬욱은 영화와 사진의 공통점을 논할 때 정답은 ‘프레이밍’이라고 답했다. 다만 순간을 고정하는 사진의 경우 오히려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 영원성이나 무한성을 더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고.
사진집 <너의 표정>은 영화 촬영장, 여행지 등에서 박찬욱이 하찮은 사물을 ‘주인공’으로 바라본 시선을 담았다. 덩그러니 접혀있는 파라솔, 묵묵하게 서 있는 바위, 누군가의 실루엣처럼 보이는 식물 이파리까지. 그가 만든 영화들을 사랑하고, 그의 시선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너의 표정>을 감상해 볼 것을 권한다.
가와시마 코도리의 <미라이 짱 (Mirai-chan)>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의 눈빛과 숨김없이 감정이 드러나는 표정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불그스름한 홍조까지 볼 위에 톡 얹혀 있으면 금상첨화. 친구의 집인 사도가 섬에 놀러 갔다가 활기 넘치는 매력쟁이, ‘미라이 짱’을 발견한 가와시마 코도리는 아끼지 않고 셔터를 눌러댔다. 큰 눈망울로 순수한 감정을 전달하는 미라이 짱의 매력은 잡지에 소개된 직후, 대중들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화제를 모았고 이후 사진집으로 출간되었다고. 해당 사진집은 출간한 당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것은 물론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때묻지 않은 아이의 모습과 섬마을의 한적하고도 평화로운 분위기가 잘 녹아든 사진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안겨줄 것. 필름 느낌이 낭낭한 <미라이 짱>은 현재 아마존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진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kotori_kaw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