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일본의 사진작가 후카세 마사히사(Masahisa Fukase)’의 사진집 ‘요코(Yohko)’가 발간됐다. 평소에 “나는 이 세상을 멈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행위는 삶에 대한 나 자신의 복수극을 나타낼 수도 있고, 아마도 그것은 내가 가장 즐기는 것”이라고 말하던 후카세 마사히사. 그의 사진집 ‘요코’는 어쩌면 그가 남긴 위문장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까마귀(Karasu)
사실 그를 상징하는 대표작은 ‘까마귀(Karasu)’다. 첫 번째 아내였던 요코와 이혼하고, ‘리카(Rika Mikanagi)’와 만나 두 번째 결혼을 한 후에 촬영된 작품들이 수록됐다. 사진집은 이름처럼 까마귀 사진들로 가득하다. 그는 훗카이도, 가나자와, 도쿄를 돌며 까마귀를 촬영했는데, 당시 병적으로 까마귀에 집착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까마귀(Karasu)’를 완성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촬영 기술을 익혔고, 새로운 실험도 주저하지 않았다. 잘 사용하지 않았던 컬러 필름을 사용하고, 다중 노출 인쇄 방식의 활용과 내러티브 텍스트를 사용해 보는 등 도전적인 행보를 보였다. 당시 그의 세상에는 오직 ‘사진’밖에 없었다. 최고의 사진집
그는 까마귀 사진들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실험적인 구도와 색감, 강한 개성이 느껴지는 사진은 일본을 넘어 유럽과 미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고, 1986년에 사진들을 엮어 완성한 사진집이 출판됐다. 후에 이 사진집은 영국 사진 저널이 소집한 5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패널들의 선정을 통해 ‘1986~2009년 최고의 사진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요코
하지만 필자는 이 글을 통해 그의 전기가 아닌, 첫 번째 아내였던 ‘요코’와의 사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세상을 멈추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에 진심이었던 그, 그리고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요코의 대한 이야기. 짧은 글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둘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자.
후카세 마사히사와 요코는 1964년에 결혼했다. 63년에 만나 사랑을 시작했고, 1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 하지만 결혼생활은 마냥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사진을 사랑했고, 요코의 감정을 깊게 들여다보지 못할 정도로 작업에 몰두했다. 어쩌면 그는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카메라, 그리고 나
오고 가는 감정과 행동 속에서 커지는 게 사랑이기에, 요코 역시 그가 진정으로 원하고 집중하는 대상이 본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서로의 감정을 확신하여 결혼을 했지만 마주한 현실은 기대와 달랐던 것. 결국 둘의 관계는 10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흔들렸다.
그는 요코와 보내는 모든 순간을 렌즈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사랑하는 연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하고자 카메라를 켜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니까. 당신의 렌즈에 사랑이 담겨있는 게 맞나요?
하지만 그가 기록한 요코의 순간들이 모두 행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는 사진에 미쳐있었고, 요코의 감정과 관계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어쩌면 요코는 그런 그가 미웠을 테다.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요코의 모습에서는 밝게 빛나는 사랑의 감정이 느껴지지만, 우산을 통해 렌즈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서는 또 다른 감정이 느껴지는 것처럼.
‘요코’라는 피사체를 위에서 바라보는 각도로 촬영한 이 사진들은 사진집 ‘요코(Yohko)’에 수록된 ‘From Window’ 시리즈다. 1973년, 그는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더라도 1년 동안 요코의 모습을 기록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매일 집을 나서는 요코의 모습을 창문을 통해 촬영했다. 당시 둘의 관계는 이미 망가져가는 중이었다. 결국 1976년, 후카세 마사히사의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였던 요코는 렌즈로부터 벗어났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사진에 대한 집착은 요코를 옥죄었고 결국에는 이별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삶의 통제력을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과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요코가 떠나간 후 그에게 남은 건 절망과 우울이었다.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결국 그는 정신과 몸을 절망에 빼앗겨버렸다. 1992년, 가장 즐겨 찾던 바 계단에서 넘어졌고, 외상성 뇌 손상을 입어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됐다. 안타까운 이 사건이 발생하고 요코는 자주 그가 있는 병원을 찾았다. 심지어 2012년 9월, 후카세 마사히사가 침대 위에서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요코는 그의 옆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