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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세계를 열어볼까

슈에무라와 우에무라 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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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최초, 최초. 이미 진부해진 것들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비로소 달리 보이는 법.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드럭 스토어에서는 수백 개의 화장품을 자유롭게 테스트할 수 있다. 물론,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원하는 화장품을 마음껏 발라보기란 불가능했다. 제품을 구매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시대. 당시 소비자에게 뷰티란 닫힌 세계였다.

그런데 이 세계를 연 사람이 있다. 바로 우에무라 슈. ‘슈에무라’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이 남자는 최초로 화장품 매장을 고안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 속에서, 우에무라 슈는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모든 발자취에는 ‘최초’가 함께 한다.

나는 130명 중 유일한 남자였다

우에무라 슈는 연극 활동을 하며 배우의 꿈을 꾼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결핵 진단을 받아 5년간 침상에 누워 있던 그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한다.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 그가 도쿄 뷰티 아카데미에 등록했을 때, 130명의 학생들 중 유일한 남자가 바로 우에무라 슈였다.

유일한 남자였던 그는 할리우드로 떠난다. 인근에서 할리우드 영화 <조 버터플라이>의 일부 장면을 촬영하던 메이크업 담당자가 남자 어시스턴트를 찾기 위해 아카데미에 방문한 것이 계기였다. 그는 슈에무라가 될 운명이었던 걸까. 이 우연한 기회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의 경력이 시작된다.

1962년 영화 <나의 게이샤> 촬영 중, 담당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마이클 웨스트모어가 병으로 자리를 비운다. 그리고 어시스턴트였던 우에무라 슈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의 손길에 서양 배우 셜리 맥클레인은 완전한 게이샤로 탈바꿈한다. 가히 놀라운 그의 실력에 사람들의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이후 우에무라 슈는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다.

이것이 슈에무라의 방식이다

전진을 멈출 줄 몰랐던 그는 3년 뒤 다시 일본에 돌아온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목표하는 이들에게 할리우드 백스테이지에서 배운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고향으로 돌아와 일본 최초의 할리우드 스타일 메이크업 아틀리에인 ‘메이크업 아틀리에’를 설립한 우에무라 슈. 그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자신의 제자를 양성한 것이 아니었다. 제품이나 기술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물론 아름다운 메이크업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예술적 마인드의 중요성도 가르쳤다.

공간의 절반은 메이크업 룸이었고, 절반은 커피를 마시며 예술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라운지였다. 이것이 슈에무라의 방식이었다.

아름다운 메이크업은 아름다운 피부에서 시작한다

1967년에는 일본 메이크업 주식회사인 Japan Makeup Inc.를 설립한다. 이곳에서 그의 혁신이 담긴 제품이 드디어 사람들에게 공개되는데, 바로 클렌징 오일인 ‘언마스크’를 선보인다. 화장을 지우는 동시에 피부가 더 좋아진다니, 당시 오일 기반의 클렌저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이듬해 그는 최초의 메이크업 컬렉션인 ‘플래기’를 선보인다. 옷에 무늬가 있듯, 아이 섀도우에도 무늬를 넣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단지 패션의 영역으로만 인식했다. 이에 우에무라 슈는 메이크업하는 모습을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로 만들어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이 역시도 최초의 메이크업 퍼포먼스였다.

마침내, 슈에무라

1983년, 마침내 도쿄의 오모테산도에 첫 번째 슈에무라 뷰티 부티크가 오픈한다. 지금은 화장품 가게를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화장품을 늘어놓고 디스플레이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테스트할 수 있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는 모든 색상과 제품을 마음껏 테스트할 수 있는 이곳은 최초이자 혁신이었다. 패션의 전유물이었던 부티크를 우에무라 슈가 최초로 뷰티에 접목시킨 것. 이 전례 없는 오픈 테스트 부티크는 너무나도 혁신적이어서, 지금은 우리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우에무라 슈.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슈에무라와 메이크업을 향한 그의 여정은 뷰티가 더 이상 산업이 아닌 예술의 한 형태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화장품을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예술을 표현하는 도구로 변모시킨 그. 우에무라 슈가 고안한 최초의 것들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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