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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찍을 수 있을 듯” 세계 최고의 사진가 유르겐 텔러

주류에서 벗어난 포토그래퍼 유르겐 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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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패션 사진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유르겐 텔러(Jurgen Teller)’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엇갈린다. 

W매거진에 근무했던 에디터 나오미 프라이의 일화를 통해 유르겐 텔러의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에 대해 빠르게 알아보자. 


몇년 전, 나는 유르겐 텔러가 촬영한 칸예 웨스트의 사진으로 잡지 커버를 완성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그가 완성한 이미지 속에서 칸예 웨스트는 스튜디오로 추정되는 흰색 배경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검은색 티셔츠와 청바지, 블랙 부츠를 신고 목에는 얇은 골드 체인을 착용한 상태였다.그의 팔은 몸 옆으로 축 늘어져 있었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플래시의 거친 섬광과 마주했다. 얼굴은 정말 지친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관객의 시선에 무관심하게 굴복하는듯한 모습은 매력적으로 보였다.발행을 끝내는 날 밤, 나는 기사를 교정하고 인쇄를 하고 있었다. 문득 나는 사진 속 칸예 웨스트와 내가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복사실 흰 벽에 팔을 벌리고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동료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동료는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인쇄기 옆에 서있는 지친 나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곳은 호화로운 사진관이 아니었고, 나는 확실히 칸예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폰으로 대충 찍은 두 장의 사진은 유르겐 텔러의 것과 나란히 놓고 보아도 그 미학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르겐 텔러는 iD, 032c, W매거진과 보그 등 남다른 감도를 가진 수 많은 잡지사와 협업하는 세계적인 포토그래퍼다. 독일에서 태어났고, 사진학을 전공했으며, 군 복무를 피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한 후에 22살에 런던으로 이주한 그의 경력은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됐다. 

지금까지의 내용에 따르면 그의 사진이 대단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아마추어주의자’다. 사진 몇장만 살펴봐도 “어머, 이건 나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것. 호화롭고 화려한 일반적인 패션 포토들과 다르게 심심하고 일상적인 유르겐 텔러의 사진은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시각과 매력을 선사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작업을 무시하는 시선과 평가가 뒤따르는 이유 역시 그 날것과 같은 스타일에 있다. 인정한다. 그의 사진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흉내낼 수 있다. 쉬운 구도, 평범한 배경을 가졌기 때문.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위대한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왜냐고? 그는 ‘좋은 사진’을 정의하는 구도와 스타일과 같은 정해진 길을 쳐다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소위 ‘인정받는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추구할 것이다.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올리기 싫고, 스토리도 고민하면서 올릴 법한 아마추어적인 사진을 자랑스럽게 선보이지는 못할 터. 유르겐 텔러, 그는 진정한 천재다. 그의 센스와 감각을 느끼고 싶다면 1999년에 발간된 사진집 <Go-Sees>를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 사진집에는 90년대 당시에 일자리를 찾던 모델들의 러프한 모습이 담겨있다. 유르겐 텔러의 렌즈에 담긴 피사체들의 나이는 대부분 10대, 당시에도 유명한 포토그래퍼였던 유르겐 텔러의 스튜디오를 무작정 찾아온 자들이었다.(물론 모두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었고, 유르겐 텔러가 작업을 위해 방문을 유도하기는 했다)

그는 과연 어디서 이 어린 모델들을 촬영했을까? 정답은 스튜디오의 1층 문 앞이다. 유르겐 텔러답다. 초라한 배경, 준비되지 않은 모델, 흔들리는 초점의 카메라, 완벽하지 않은 구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빛의 각도와는 다르게 <Go-Sees> 사진집에 수록된 모든 작품들은 하나같이 ‘매혹적’이다. 아니라고? 모르겠다고? 사진을 확대해서 5분 정도 뚫어져라 확인해 보자. 분명 그의 철학이 느껴질 것.(그가 ‘Go-See’ 프로젝트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에 대하여 굳이 글로 설명하지 않겠다)

그의 이름에 올려진 명성의 무게 만큼, <Go-Sees>를 위해 렌즈에 포착된 어린 모델들 중에는 지젤 번천처럼 훗날 슈퍼스타가 된 인물들도 있다. 물론 이름조차 알아내기 어려울 만큼 무명으로 사라진 인물들도 존재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는 나무다. 작업을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줄곧 자신의 스타일을 근성있게 밀어붙이고 있다. 어느정도냐면 이제 대충 찍은듯한 화보 사진만 보면 전부 유르겐 텔러의 작품 같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필자는 인생을 관통하는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완벽을 추구한다. 아름답고 멋진 결과물을 싫어하는 이는 없을 것. 어떤 분야든 ‘최고’를 의미하는 기준이 있으며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잣대를 촘촘하게 갖추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정해진 틀과 잘 닦인 길을 걷는 것 만이 훌륭한 선택일까? 우리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그리고 유르겐 텔러는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다’라는 훌륭한 표본이 되어준다.오히려 그는 주류에서 벗어나 자신이 생각하는 ‘미’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의 스타일을 이해할 수 없는 주류의 반대와 저평가 또한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세계 최고의 포토그래퍼로 손에 꼽히는 이유는 분명 그의 작품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진가를 알아보는 일부의 마음을 사로잡은 유르겐 텔러, 성공이다. 그의 삶은 반짝이며 작품의 가치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분명 그의 스튜디오 사이즈와 빛깔을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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