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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의 시대는 끝났다

디터 람스와 미니멀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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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작품을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창작하는 것은 모든 디자이너와 예술가가 추구하는 방향성이자 지표일 것이다. 하지만 디터 람스는 달랐다. 모든 사람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단순하게 디자인해야 한다고 말한 디터 람스. 그는 기능을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정의 내렸다.

디자이너의 디자이너, 디자이너가 사랑한 디자이너. 끊임없이 회자되는 디터 람스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따른다. 아직까지 사랑받는 그의 미니멀리즘 철학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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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터 람스는 누구인가

디터 람스는 목수인 할아버지 아래에서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7살에 테크니컬 아트 컬리지에 입학하는데, 디터 람스는 이곳을 ‘작은 바우하우스’라고 회상했다. 그가 입학했을 당시 독일은 재건을 위한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였다. 테크니컬 아트 컬리지의 동료들은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이어받아 더 좋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이들은 사람들이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해 논의했다.

동료들 대부분은 인테리어 디자인 업계에서 일했지만 디터 람스는 건축만을 고집했다. 그리고 건축의 중심지였던 프랑크푸르트로 떠났다. 하지만 수많은 포트폴리오를 보냈음에도 회신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프랑크푸르트를 배회하던 찰나, 마침내 1953년, 디터 람스는 당시 가장 큰 건축 회사 중 하나였던 오토 아펠의 스튜디오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디터 람스의 회사 동료가 ‘브라운’이라는 회사를 그에게 소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브라운은 작은 전자제품 회사에 불과했다. 디터 람스는 동료와 함께 포트폴리오를 지원해 누가 붙을 것인지 내기한다. 그리고 브라운에서 합격 연락을 받은 것은 디터 람스였다. 그는 오토 아펠의 스튜디오를 떠나 브라운에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입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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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은 엔지니어 막스 브라운이 설립한 전자제품 회사로, 라디오와 축음기가 결합된 형태의 제품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막스 브라운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에르윈 브라운, 아르투르 브라운 형제가 브라운을 이어갔다. 형제는 20여 년 전 나치의 탄압으로 사라진 바우하우스에 주목했고, 바우하우스의 디자인을 추구했다. 일각에서는 브라운의 바우하우스 정신이 디터 람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디터 람스가 건축을 넘어 제품 디자인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자, 브라운 형제가 한스 구겔로트의 1954년 라디오 디자인 초안을 디터 람스에게 보여주었다. 그저 프로토타입이었을 뿐인데 디터 람스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건축가로서의 커리어는 잊힐 정도였다고 하니, 그 열정과 사랑이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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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는 당시 일종의 가구로 인식이 자리 잡았는데, 브라운의 디자이너들은 가구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디터 람스가 처음 스케치 한 라디오는 나무로 된 바디에, 라디오와 레코드 플레이어가 상단에 위치한 형태였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로는 작동이 온전히 되지 않아 한스 구겔로트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는 메탈 소재로 제작할 것을 조언했다.

그러나 상단의 커버에도 문제가 있었고, 디터 람스는 플렉시글라스 소재의 커버를 제안했다. 목재 위주의 가구가 주류였던 시대에서, 화학공업의 발전으로 등장한 신소재 플라스틱 소재를 임스 부부가 가구 제작에 활용해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을 이끌던 때였다. 이에 디터 람스 또한 플렉시글라스로 커버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를 본 에르윈 브라운은 이게 앞으로 우리가 작업할 방식이라며 디터 람스를 지지했다. 그렇게 탄생한 라디오가 바로 오늘날까지 명작으로 남아있는 백설 공주의 관, SK4다. 이는 디자인의 전환점이자 브라운의 전환점이 된다.

디터람스-브라운-라디오

브라운에서 그가 함께 일한 울름 대학 출신의 디자이너들은 모듈러 스타일과 정제된 느낌을 추구했다. 디터 람스는 이를 금방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브라운에 입사한 지 불과 6년 후, 그는 최고 디자인 책임자로 임명된다. 그리고 그는 1961년부터 1997년 그가 은퇴할 때까지 30여 년간 브라운의 디자인 책임자로서 자리를 지켰다.

1970년대에 디터 람스는 환경과 소비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드는 디자인이 과연 좋은 디자인일지 스스로 의문을 가졌다. 이에 대해 고찰하는 과정에서 그가 깨달은 것을 열 가지로 정의 내렸다. 허나 이 정의는 영원하지 않으며, 수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좋은 디자인의 조건은 기술, 문화 등을 통해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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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좋은 디자인이란

  1. 혁신적이어야 한다
  2. 유용해야 한다
  3. 아름다워야 한다
  4. 제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5. 정직해야 한다
  6.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7.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
  8. 마지막 디테일까지도 철저해야 한다
  9. 환경친화적이어야 한다
  10. 최소한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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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터 람스는 낭비의 시대가 끝나길 바랐다. 그는 지속 가능하며, 혁신적인 디자인을 추구했다. 불필요한 것을 생략함으로써 필수적인 요소를 강조한다. 이것이 그의 디자인 철학이었다. Less but better. 덜어낼수록 아름다운, 절제의 미. 그리고 마침내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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