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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 밈 보이가 발산하는 치명적 매력, <킹 오브 더 힐>

코미디에 진심이었던 물리학 전공자의 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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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을 타깃으로 한 미국식 코미디 애니메이션의 ‘맛’은 가히 독보적이다. ‘완벽히 이상적인 가족’이라는 가면 아래 숨겨진 인물들의 모순적이고도 현실적인 모습은 시청자들을 끌어모으는 강력한 요소. <심슨 가족>에서부터 시작된 특유의 개그코드는 매일 밤 시청자들을 TV 앞에 앉혀놓는 데에 성공했고, 제작사 폭스(FOX)는 ‘제2의 <심슨 가족>’을 원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작품이 바로 <킹 오브 더 힐>. 1997년부터 2009년까지 방영된 이 작품은 2번의 에미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 타임지 선정 ‘역대 가장 위대한 TV 쇼 100선’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 인지도를 쌓은 것은 ‘밈’으로 쓰기 딱 좋은 캐릭터 바비 힐의 짤방들 뿐. 식사 시간에 <심슨 가족> 시리즈만 무한 재생하고 있다면 이제는 호선을 바꿔볼 때다. <킹 오브 더 힐>의 치명적인 매력에 대해 알아볼 차례. 


<킹 오브 더 힐>의 제작자인 마이크 저지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그가 진심이었던 것은 물리학이 아닌 ‘코미디’. 어떻게서든 자신의 개그 코드를 퍼뜨리고 싶었던 그는 낡은 카메라 한대와 공책만으로 단편 애니메이션 2편을 제작해 페스티벌에 출품했다. 당시 본인의 애니메이션 자체가 훌륭하지는 않다고 판단했지만, ‘코미디’가 주 목적이었기에 당당하게 출품할 수 있었다고. 그는 해당 애니메이션이 담긴 VHS 테이브 15개 가량을 제작사에 보냈고, 이후 한달도 채 되지 않아 많은 러브콜을 받아냈다. ‘애니메이터’로서의 기량은 몰라도, 작가로서의 기량은 출중했던 것.

당시 그가 즐겨 그리던 캐릭터는 미 남부에서 ‘부바(Bubba)’라고 불리는 가방끈 짧은 중년의 백인 남성이다. 4명의 부바들이 서서 “음”, “응”, “어”, “그렇지”라고 읊조리는 장면은 그가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밑그림 중 하나였는데, 이는 곧 <킹 오브 더 힐>의 토대가 되었다. 텍사스 주 알런(Arlen)이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거주하는 중산층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 <킹 오브 더 힐>. 특히 주인공들이 감리교 신자인 데다 엄격한 윤리 잣대가 적용되는 금욕주의의 청교도 문화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 ‘모순적 재미’는 더욱 짙게 묻어난다.

이를 가장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는 시즌 1의 두 번째 에피소드 <보수적인 페기>. 바비의 엄마인 페기가 학교 성교육 선생님으로 낙점된 이야기를 다루는 에피소드다. 성교육 자체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의 사상과 이를 이겨내는 페기의 프로 의식은 이 에피소드를 더욱 감칠맛 나게 만드는 포인트.

그녀가 페니스(Pennis)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쉽게 내뱉지 못해 거울을 보고 연습하는 장면은 <킹 오브 더 힐>의 배경이 되는 도시 알런의 분위기를 가늠케 한다. 해피니스의 ‘해’를 묵음으로 발음해가며 연습하는 장면은 명장면 중 명장면.

<킹 오브 더 힐>은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가족애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세대갈등이 매 에피소드에 적나라하게 녹아들어 있으며 정치적, 사회적 요소들을 풍자하여 독자적인 웃음 코드를 구축했다. 우리의 주인공 ‘바비 힐’은 그 어떤 캐릭터보다 시청자들의 웃음 코드를 꿰고 있는 인물. 

까까머리 밈 보이로 알려진 그인 만큼 압도적인 비주얼과 사춘기 소년만이 내뱉을 수 있는 명대사 라인업을 자랑한다. 이성과 얽혀있는 바비 중심 에피소드들은 거를 타선이 없으니 꼭 시청해 볼 것.

바비 힐, 페기 힐, 행크 힐. ‘힐 가족’ 외에도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다. 남부 사투리와 특유의 횡설수설 화법 탓에 현지인들도 대사를 알아듣기 힘들다는 행크의 이웃, 제프 붐하우어부터 힐 가족 집에 얹혀사는 바비의 사촌 누나 루앤 플래터까지. 현재 훌루(Hulu)에서 모든 시즌을 시청할 수 있다고 하니 첫 번째 시즌부터 천천히 정주행 해보자. 왜 굳이 지금 정주행을 권하느냐고? 

2009년에 막을 내린 <킹 오브 더 힐>이 왕의 귀환을 알렸기 때문이다. 2024년 상반기 예정된 리부트를 생생하게 시청하고 싶다면 지금부터 정주행해야 늦지 않을 것.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어 자막을 적용해서 볼 수는 없지만, 한때 EBS 밤 시간대에 방영된 작품이니 리부트 기념 재방영을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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