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군복은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트렌치코트, 더플코트, 필드 재킷과 봄버 재킷, 카고 팬츠, 심지어 무스탕까지. 모두 전쟁과 군인을 위해 발명됐다. “흥, 그 정도는 이미 나도 알아. 겨우 그 정도야?” 아니, 바라클라바도 군복에서 유래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170년 전, 바라클라바 전투에 참여한 영국군이 겨울을 버틸 수 있도록 처음 제작됐다. 그래서 이름이 ‘바라클라바’인 것.(이건 몰랐지?) 어쩌면 패션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밀리터리. 오늘은 이 밀리터리 웨어, 즉 군복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패션 브랜드 다섯 곳을 모았다. 한 번쯤 들어본 브랜드도 있고,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도 있을 것. 거두절미하고 바로 알아보자.
‘이름 걸고 장사한다’ 나이젤 카본(Nigel Cabourn)
첫 번째 브랜드는 나이젤 카본이다. 잉글랜드 출신 디자이너 ‘나이젤 카본(Nigel Cabourn)이 설립한 브랜드로 밀리터리를 포함한 1970년대 복식사에서 영향을 받아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나이젤 카본은 두 개의 라인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어센틱 라인과 메인 라인이 있으며, 각각 영국과 일본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두 라인은 모두 지역의 강점을 살려서 운영되고 있다. 영국에서 생산되는 어센틱 라인의 경우, 해리스 트위드처럼 영국을 상징하는 소재가 주로 쓰이며, 일본에서 생산되는 라인의 경우, 일본 내에서 생산된 원단과 장인 정신을 살린 생산기술을 기반으로 제작되고 있다.
에베레스트 파카
국내에는 공식 매장이 없는 나이젤 카본이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건 에베레스트 파카 덕분이다. 에베레스트 파카는 에베레스트산을 최초로 오른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와 그의 팀이 착용했던 파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나이젤 카본은 작은 부분까지 최대한 오리지널과 동일하게 제작하기 위해 힘썼고, 최고의 소재, 완벽한 생산기술로 완성된 에베레스트 파카는 특유의 빈티지한 감성과 디자인, 영하 40도의 강추위도 거뜬한 보온성 덕분에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단점이라면 4백만 원에 육박하는 부담스러운 가격뿐.
진짜 밀리터리를 느끼고 싶다면
위에서 설명한 에베레스트 파카, 스테디셀러인 말로리 자켓과 카메라맨 자켓은 영국에서 주로 생산된다. 모두 빈티지를 복각한 제품들이지만, 탐험과 등반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제품이 많기에, 밀리터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밀리터리 무드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일본에서 생산되는 메인 라인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빈티지의 진정한 본고장, 그렇기에 나이젤 카본 역시 일본에서 밀리터리 복각 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나이젤 카본은 유명한 빈티지 수집가다. 지금은 브랜드 휴먼메이드(HUMANMADE)를 운영하고, 겐조(KENZO)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는 ‘니고(NIGO)’와 견주어도 꿇리지 않을 정도. 그가 만든 제품을 믿고 구매할 수 있는 이유다.
흉내가 아닌, ‘진짜 밀리터리’를 경험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하단에 위치한 브랜드 링크를 통해 사이트에 접속해 보자. 분명 마음을 사로잡는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을 것.
나이젤 카본‘심심하지만 불멸한 신발’ 리프로덕션 오브 파운드
두 번째 브랜드는 ‘리프로덕션 오브 파운드(Reproduction of Found)’다. “아, 그 잠깐 유행했던 브랜드?” 맞다. 홍대, 한남, 강남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거리를 지배했던 바로 그 신발 브랜드다. 하지만 리프로덕션 오브 파운드를 그저 유행에 따라 지나가는 브랜드로 치부할 수는 없다.
가장 잘 만든 독일군 스니커즈
리프로덕션 오브 파운드를 대표하는 제품은 역시 독일군 스니커즈다. 정말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베이직한 디자인의 스니커즈다. 하지만 이들의 독일군은 확실히 다르다. 그냥 말로만 다른게 아니라, 정말 시각, 촉각 자체가 일반 독일군 스니커즈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유는 소재에 있다. 이태리산 소가죽을 메인으로 사용하고, 돈피 스웨이드로 마감했다. 안감에도 돈피를 사용해서 우수한 내구성과 착용감을 완성했다. 그리고 생산을 슬로바키아에서 진행하는데, 지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실제 군사 훈련 신발을 제작하던 공장을 찾아 생산을 맡기고 있다. 이처럼 ‘근본’에 집착했다는 점 또한 합격이다.
독일군 ‘원툴’ 아니야
리프로덕션 오브 파운드에 독일군 스니커즈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 해군이 신던 트레이닝슈즈를 복각한 모델부터 프랑스군이 신었던 트레이닝슈즈를 모티브로 한 모델까지. 다양한 국가의 군대에 실제로 보급됐던 신발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선보이고 있다.
리프로덕션 오브 파운드, 물론 가격대는 좀 있지만 밀리터리를 제대로 복각한 스니커즈 한 켤레가 갖고 싶다면 강력 추천한다.
‘장점은 흡수하고, 단점은 버린다’ 이스트 로그
마지막 브랜드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스트로그(EASTLOGUE)’. 론칭한지 12년 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패션 브랜드다. 국내에서 빈티지를 기반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카이브가 부족하고, 제작에도 어려움이 많기 때문. 이스트 로그 같은 브랜드가 소중한 이유다.
이스트로그는 과거 야외활동에서 주로 착용됐던 옷에서 영감을 받아 컬렉션을 완성한다. 그들은 완벽한 복각보다는,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실제로 이스트로그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타임리스한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패션을 원한다면’
이스트로그는 ‘패션’의 성향을 확실하게 띄고 있다. 한마디로 옷이 멋을 부릴 줄 안다. 전체적으로 디테일이 많고, 사용되는 컬러 또한 다채롭다. 물론 과거 밀리터리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지만, 전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실루엣도 마찬가지다. 타이트한 핏보다 와이드 한 실루엣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의 니즈를 반영해서 전체적으로 사이즈가 넉넉한 편. “나는 빈티지도 좋고, 밀리터리도 좋은데, 좀 더 세련됐으면 좋겠어”라면 이스트로그로 가자.
‘선택지는 많아요. 골라, 골라.’
오늘 소개한 세 개의 브랜드 외에도 선택지는 많다. 밀리터리와 패션은 서로 땔 수 없는 관계이다 보니, 잘하는 브랜드가 워낙 많다. 복각에 충실하는 버즈릭슨, 리얼 맥코이도 있고. 위트를 더하는 오어슬로우도 있다. 각자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는 재미가 있는 것. 패션에 정답은 없다. 천천히 즐기면서 디깅해보자. 자연스럽게 취향에 딱 맞는 브랜드를 만날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