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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지의 스킨헤드는 어쩌다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었나

수많은 문화를 담은 스킨헤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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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머리를 민다고 ‘스킨헤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영국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킨헤드. 그들은 머리를 밈으로서 자신들의 위치를 표현했고, 긍지를 가지고 거리를 활보했다. 시작은 순수했지만, 그 끝은 무자비한 갱단이 돼버린 스킨헤드에 대한 모든 것. 지금부터 알아보자. 


‘돈은 없지만, 가오는 있다’

스킨헤드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드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야 된다. 스킨헤드 문화 자체가 모드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 모드족은 1960년대 후반, 영국 런던에서 탄생했다. 당시 모드족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 멀끔하고 젊은 청년들이 슈트를 쫙 빼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사진을 보면 마치 상위계층의 자녀들이 거리로 나온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정체는 정반대,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노동자 계층의 청년들이다. 그들은 어째서 고가의 이태리 슈트를 차려입고 거리로 나오게 됐을까? ‘낭만이 있었던 모드족’

그들이 고가의 이태리 슈트, 반짝이는 첼시 부츠, 뒤로 멀끔하게 넘긴 올백 머리 차림으로 거리에 나온 이유는 신분을 잠시 망각하고 자유롭게 일탈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고된 노동으로 지친 현실을 잠시 잊고, 신분에 맞지 않는 값비싼 옷을 입는 것. 과거 영국의 젊은 청년들에게는 이런 행위 자체가 가슴 뛰는 일탈이었다.‘모드족의 영원한 친구, 베스파’

그들이 단순히 멀끔한 슈트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한 게 전부는 아니다. 모드족과 꼭 함께하는 친구가 있었으니. 화려하게 튜닝된 베스파 스쿠터가 바로 그 주인공. 모드족은 베스파에 여러 개의 라이트를 전면에 다는 등 화려하게 튜닝했다. 그렇게 서로를 식별하며 함께 몰려다니고, 자유를 즐겼다. 그로 인해 폭주족들과의 마찰도 있었으나 모드족은 굴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나갔다. 끝에는 결국 폭주족들도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했다고.‘Come here rude boy’

본격적으로 스킨헤드 문화를 소개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알아보자. 모드족 문화와 같은 시기, 자메이카에서 탄생한 거리문화가 있었으니, 그 이름도 유명한 ‘루드 보이(rude boy)’다. 자메이카의 루드 보이는 모드족과는 정반대로 굉장히 폭력적이었다. 실업 상태, 혹은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자메이카의 젊은이들이 폭력성을 드러내며 집단으로 활동했고, 그들을 지칭하여 ‘루드 보이’라고 불렀다. ‘스킨헤드’는 영국으로 넘어온 자메이카 출신 이민자들로부터 전파된 루드 보이, 당시 영국 거리를 지배하던 모드족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숨지마, 당당하게 보여줘’

모드족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스킨헤드지만, 패션에서만큼은 그들과 정반대의 성향을 내비쳤다.  신분을 감추는 멋진 옷차림을 선보였던 모드족과는 반대로, 스킨헤드는 자신들의 위치를 패션으로 가감 없이 보여준 것. 찢어지고 더럽혀진 청바지,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체크 셔츠, 종아리를 감싸는 닥터마틴 8홀 1460 부츠가 그들의 상징이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스킨헤드의 패션은 더 남자다워졌다. 알파 인더스트리의 MA-1 재킷, 론즈데일의 번쩍이는 항공 재킷, 실제로 노동자들이 착용했던 동키 재킷까지. 그들의 재킷은 전부 남성미가 진하게 느껴지는 것들뿐. ‘왜 머리를 밀었을까’

짧게 자르거나 완전히 민 헤어스타일, ‘스킨헤드’라는 그들의 명칭은 이런 독특한 헤어스타일에서 나왔다. 그들은 왜 머리를 밀었을까? 단지 불량해 보이기 위해서? 아니다. 그들이 머리를 민 이유는 꽤나 논리적이다. 그들은 적은 수입을 가져가는 노동자 계층이었다. 당연히 머리를 관리할 여유가 없었고, 이가 자주 생겼다. 또 그들은 공장에서 근무했기에, 기계에 머리가 껴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들이 머리를 민건 가려운 이를 없애고, 치명적인 부상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어떤가, 굉장히 합리적이지 않은가?“우리는 영국을 대표해” 

영국 노동자 계층을 상징하던 스킨헤드는 자신들의 위치를 자랑스러워했다. 생활은 어려웠지만, 영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자긍심을 가졌다. 동시대를 풍미했던 모드족과 히피족은 자연스럽게 적이 됐다. 상위계층을 흉내 내거나 노동을 멸시하는 그들은 스킨헤드와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들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었나’ 

‘스킨헤드 = 인종 차별’이라는 인식은 왜 만들어졌을까? 우리는 역사를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값싼 이민 노동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졌고, 영국인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노동계층이라는 점에 큰 자긍심을 가지고 있던 스킨헤드는 이런 현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이민 노동자들을 멸시하기 시작했고, 폭력까지 휘두르며 빠르게 극단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시대의 흐름이 그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진짜 영국이다’ 

영화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스킨헤드가 극단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는 1980년대 영국의 모습을 담았다. 스킨헤드의 패션 스타일은 물론이고, 루드 보이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패션 스타일까지 영화에 등장한다. 당시 영국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스킨헤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싶다면 꼭 한번 시청해 보는 걸 추천한다. 물론 영화 자체의 완성도 역시 굉장히 높다. ‘미국으로 넘어간 스킨헤드’

영국에서 시작된 스킨헤드는 미국으로 퍼졌다.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미국의 스킨헤드는 영국에서보다 더 과격하고 폭력적이었다. 텍사스와 중서부 등지에서 시작된 미국의 스킨헤드는 갱단으로까지 발전했고, 이민자와 흑인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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