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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팍함과 천재성은 비례합니다, 죽음을 동경한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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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알렉산더 맥퀸은 유별났다. 전통적인 런웨이 방식을 따르지 않았고, 매번 새롭게 자신만의 상상력과 표현력을 더한 쇼를 선보였다. 으레 천재들이 수많은 논란과 함께했듯, 그 역시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패션계의 비판과 논란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는 생전 4개의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고, 2003년에는 국제 디자이너상까지 들어 올렸다.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괴팍한 성격을 가졌음에도 그의 능력이 얼마나 남달랐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 사교보다는 실력에 집중했던 성격도 한몫했다. 아쉽게도 그가 완성한 컬렉션은 지난 2010년을 기점으로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사람들의 어둡고 가려진, 진실한 내면을 창작의 근원으로 삼았던 리 알렉산더 맥퀸이 목을 매달아 자살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업계를 슬픔으로 채웠다. 그의 컬렉션이 큰 영감이자 자극이었기 때문일까. 패션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가수와 배우 할 것 없이 수많은 예술계 사람들의 애도 행렬이 이어졌다. “그의 디자인에는 늘 죽음에 대한 동경이 서려 있었다. 아마도 그가 죽음을 희롱하는 사이, 죽음이 그에게 매혹을 느꼈던 모양이다” – 칼 라거펠트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걷지 않고 직접 개척했던 패션계의 앙팡테리블, 리 알렉산더 맥퀸을 기억하며 그가 선보였던 역사에 남을 컬렉션을 들여다보자. ‘이 순간 패션은 다시 태어납니다’

1999년 선보였던 S/S 쇼는 리 알렉산더 맥퀸을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다. 컬렉션 마지막을 장식했던 피날레 덕분. 서로 다른 색의 페인트를 장전한 로봇이 스스로 회전하는 바닥 위에 서있던 샬롬 할로우를 공격했다. 공포에 떠는듯한 포즈를 취하던 그녀는 이내 무자비하게 뿌려지는 페인트를 온몸으로 받아냈고, 그녀가 입고 있던 순백의 드레스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경악, 그리고 환희. 쇼장은 흥분으로 얼어붙었고, 그 순간 패션은 다시 태어났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에 선보인 이 퍼포먼스는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됐고, 현대 패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코페르니의 2023 S/S 쇼를 가장 큰 예시로 들 수 있다. 코페르니는 쇼에서 액체 상태로 유지되다가 공기와 닿으면 섬유로 변하는 ‘페브리칸(Favrican)’을 활용했고, 뮤즈는 벨라 하디드였다. 속옷만 입고 있던 그녀의 몸에 페브리칸이 발사됐고 10분이 지나자 딱 맞는 원피스가 완성됐다. 패션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준 쇼는 찬사를 받았다. ‘차라리 제목이 없는 게 낫겠군’

리 알렉산더 맥퀸의 1998 S/S 컬렉션에는 이름이 없다. 원래는 그의 마음에 쏙 드는 제목이 있었는데, 바로 ‘골든 샤워’다. 하지만 역시나 이 자극적인 타이틀은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컬렉션을 후원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후원사의 간곡한 부탁에 맥퀸도 고집을 꺾었지만, 골든 샤워가 아니라면 ‘무제(Untitled)’로 가겠다고 주장했다. 결국 1998 S/S 쇼는 제목 없이 진행됐다. 하지만 왜인지 맥퀸은 신나 보였다. 이유가 밝혀진 것은 피날레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쇼장에 드리운 노란 조명과 쏟아진 인공 비는 런웨이를 흥건하게 적셨고, 게스트들은 리 알렉산더 맥퀸만의 ‘혁신’에 젖어들었다.  ‘끔찍하고 잔인하다’

리 알렉산더 맥퀸에게 ‘여성 혐오주의자’라는 의혹과 불경스럽다는 비판을 안겨준 초기 컬렉션도 빼놓을 수 없다. 맥퀸은 1992년에 브랜드를 시작했고, 1993년에 첫 번째 쇼를 선보였다. 기대와 함께 시작된 알렉산더 맥퀸 S/S 1994 “허무주의” 데뷔 쇼는 만장일치로 ‘공포 쇼’라는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과감했기 때문. 여성 모델들은 학대당한 것처럼 멍과 피가 가득했고, 흙과 피가 흩뿌려진 런웨이를 걸었다. 하지만 경악한 관객들이 눈을 감아버리게 만든 진짜 주인공은 ‘범스터 팬츠’였다. 엉덩이가 시원하게 드러나는 범스터 팬츠는 충격을 안겨줬는데, 후에 맥퀸은 가디언즈와의 인터뷰에서 “척추의 아래쪽은 신체 중에서 가장 에로틱하고 아름다운 부분이다”라고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끝까지 평범하지 않아’

2010 SS 컬렉션 ‘플라톤의 아틀란티스(Plato’s Atlantis)’, 맥퀸이 남긴 마지막 ‘완성 컬렉션’이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2010 FW 컬렉션의 80% 이상을 완성했다. 하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디자인 팀은 그가 남긴 컬렉션을 특별히 초대된 소규모 그룹의 청중에게만 선보였다.)

‘플라톤의 아틀란티스’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맥퀸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물속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되는 미래를 상상하며 컬렉션을 완성했다. 쇼는 드라마틱 하게 전개됐다. 초반에는 녹색과 갈색을 주로 사용하며 육지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표현했고, 후반으로 갈수록 파란색 계열을 사용하며 바다로 이동하는 인간을 보여줬다. 맥퀸의 마지막 컬렉션은 레이디 가가와도 인연이 깊다. 쇼의 피날레에서 레이디 가가의 ‘Bad Romance’가 공개됐기 때문. 이 쇼는 최초로 인터넷을 통해 라이브된 쇼였는데, 레이디 가가가 트위터를 통해 스트리밍 웹사이트 링크를 공유하자 서버가 다운됐다. ‘굿바이, 맥퀸’

그의 죽음 뒤에는 깊은 슬픔이 있다. 2008년에 가장 사랑하는 친구였던 이자벨라 블로우가 자살했다. 슬픔을 감추지 못한 맥퀸은 이어지는 2008 S/S 컬렉션 쇼 베뉴를 날아가는 새 모양으로 만들며 그녀를 추모했다. 하지만 슬픔이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상실감은 그를 무너지게 만들었고, 어머니의 사망으로부터 8일이 지난 2010년 2월 11일 아침,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그의 옆에는 “내 개들을 돌봐줘 미안해 사랑해”라는 짧은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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