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품은 영국 왕실 로열 워런트를 보유한 제품입니다.’라는 문구. 정확히 의미하는 바는 알지 못해도 왠지, 끌린다. 호화스러운 마크 하나가 박혔을 뿐인데 높은 가격마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마법. 하지만 문구 하나에 홀려 값비싼 제품을 구매했다 해도 후회할 필요는 없다. 그럴만한 가치가 분명 있을 테니.
영국 왕실의 ‘로열 워런트’ 제도는 중세 시대에서부터 시작됐다. 왕실에 물건을 공급하는 상인들을 보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제도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 현재도 왕실 인사들만이 워런트를 부여할 수 있다. 조건 자체가 까다로운 데다, 5년마다 갱신 심사를 통해 그 퀄리티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로열 워런트를 갖고 있는 800여 개의 브랜드들 중 1700-1800년대부터 시작한 브랜드가 수두룩한 만큼 정통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왕실 문장이 박힌 제품이라면 푸드, 패션, 리빙, 뷰티까지 ‘믿고 산다’라는 소비자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필자도 슬쩍 들여다봤다. “로열 워런티를 받은 브랜드 제품은 대체 어떻길래?” 그 궁금증을 해결해 보고 싶다면 하단에서 소개할 4개의 브랜드를 주목해 보자. 왕실 인사들과 수많은 셀럽들이 택한 브랜드, 지금 바로 소개한다.
DENTS
존 덴츠가 1777년, 작은 목조 주택에서 시작한 사업은 장갑 제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클래식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배트맨>의 조커 역할을 맡은 잭 니콜슨도, <스카이폴>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다니엘 크레이그도 모두 덴츠 장갑을 착용했다. 250년의 브리티시 헤리티지를 간직한 그들. 질 좋은 가죽 장갑을 한 켤레 구매하고 싶다면 당신이 곧장 달려가야 할 곳은 바로 덴츠다.
조지 6세 또한 덴츠가 제작한 즉위식 장갑을 착용했다고 하니 말 다 했다. ‘가죽 장갑’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심플한 겨울 롱 코트에, 무난한 트렌치코트에, 강렬한 봄버 재킷에 슬쩍 얹어주기만 해도 그 강인함은 자연스럽게 살아난다. 과감한 드레스 위에 컬러 장갑을 더해 독보적인 분위기를 완성하는 것도 좋을 것.
JOHN SMEDLEY
1784년 시작된 니트 브랜드 존 스메들리의 여정은 7대째 계속되고 있다. 마릴린 먼로, 존 레논, 오드리 햅번, 제임스 딘, 톰 크루즈, 스칼렛 요한슨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의 선택을 받으며 그 명성을 자랑한 존 스메들리. 그들은 뉴질랜드산 메리노 울, 해도면, 캐시미어 등 최상급의 천연 소재만을 사용한다.
또, 촘촘하고 섬세한 ‘하이 게이지 니트’ 시장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만큼 의심의 여지 없는 퀄리티를 뽐낸다. 수많은 장인들이 포진되어 있는 자체 공장 덕에 폴 스미스, 버버리, 비비안 웨스트 우드, 마가렛 하웰, 꼼데 가르송 등 다수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 존 스메들리 공장을 사용했다고. 후줄근한 한 계절 용 니트에 질려버린 소비자라면 존 스메들리를 주목해 보자.
FLORIS LONDON
영국의 대표 향수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히는 플로리스 런던은 1730년에 런던 저민가 89번지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 2024년까지 같은 자리에서 9대째 대를 이으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오리지널리티 하나만큼은 압도적인 곳.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애용하는 향수도 바로 플로리스 런던의 제품이다.
그렇다면 향은 어떨까? 영국의 중심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300년 가까이 사랑받은 브랜드인 만큼, ‘은근한 우아함’을 뽐내는 향수로 가득하다. 만족할 만한 원료를 찾기 위해 먼 여정도 마다하지 않는 선조의 가치관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플로리스 런던 향수에서는 퀄리티 원료에서 묻어나는 우아함을 간직할 수 있다.
사실 플로리스 런던이 독보적인 이유는 ‘비스포크’ 때문이기도 하다. 고급 양장점에서 맞춤양복을 제작하듯, 조향사와 대화를 통해 제작하는 나만의 향수라니. ‘나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 중에 있다면, 플로리스 런던의 비스포크 서비스와 함께해 보는 건 어떨까. 6개월에 걸쳐 제작되는 ‘퍼퓸 디자인’은 여러 번의 개인 상담을 통해 취향을 찾아가기 때문에 가격이 높은 편. 5000유로에 달하는 가격을 지불하기는 부담스럽다면, 2시간 과정의 ‘향수 커스텀’ 서비스를 택할 수도 있다. 가격은 550유로.
BARBOUR
바버하면 영국, 영국하면 바버. 3개의 로열 워런트를 받은 브랜드 바버는 1894년 존 바버가 창업한 이후 수많은 왕실 인사들의 선택을 받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들의 왁스 재킷 라인. 원단에 왁스를 발라 방수 효과를 낸 재킷인 만큼 영국의 날씨와도 일맥상통하여 ‘국민템’으로 불리는 제품이다. 방수 기능에 더해진 우수한 통기성과 내구성 덕에 해군 군복을 보급하기까지 했다고.
주기적으로 왁싱을 해야 하는 바버 재킷은 ‘패션 고인물들의 영역’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아들에게, 손자에게 물려주고픈 브랜드로는 바버만 한 곳이 있을까. 엔지니어드 가먼츠, 슈프림과 같은 브랜드와 협업하고 디자이너 알렉사 청, 리들리 스콧과도 협업하며 바버는 끊임없는 발전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