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사라진 거리에 나타난 공간, 성수. 버려졌던 동네가 이제는 지방 사람들의 서울 여행 필수 지역이 되었다. 지나온 세월에 현재의 가치가 더해진 성수라는 공간의 가장 큰 매력은 ‘공존’.
획 하나하나의 폭을 신경 쓴 오래된 간판과 활자로 찍은 듯한 메뉴판. 공존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성수의 어느 한 공간에 다녀왔다. 입구부터 식당이 맞나? 하는 물음표를 만드는 곳. ‘제일’
물음표로 가득한 공간
정말 입구부터 물음표로 가득했다. 어디야? 동네 철물점 같은 간판을 앞두고 어디가 식당인지 연신 찾아냈다. 다행히도 사장님이 반겨주시며 안내해 주셨다. 들어가서도 물음표의 연속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텅 빈 공간이 나를 반겨주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식사를 할 수 있는 자리는 맞은편에 마련되어 있었다. 일자로, 길게 연결되어 있는 식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텅 빈 공간을 오히려 웅장하게 만들었다.
시작부터 자리에 앉을 때까지 물음표로 가득했고, 공간이 웅장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물음표에 느낌표가 하나 붙었다.
저는 연기를 전공했습니다
상업적인 컨셉으로 가득한 가게들 사이에, 진심을 지키려는 사람이 있었다. 자영업자로서의 본분은 다하면서도, 예술의 영역을 사랑하는 제일의 ‘김주환’ 사장님. 그는 연기를 전공했다.
김주환 사장님은 제일을 운영하면서 연기자로서의 꿈도 잃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연기를 하기 위해 프로필을 여기저기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모든 것에 열정이 가득하다. 그 열정과 진심은 요리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등어를 구울 때도 50분 동안 쉬지 않고 그릴을 돌린다. 식재료는 모두 잡초를 직접 뽑고, 관리하는 유기농이라고. 주류가 있는 냉장고에도 그저 술의 종류가 아닌 술에 대한 느낀 점을 써놓았다. 한지에 잉크를 한 땀씩 담은 듯 정성스럽게.
나를 어지럽게 했던 간판부터, 공간, 메뉴판, 음식 모두가 그의 신비스러운 무대였고, 모든 것이 조화롭게 춤추고 있었다.
굽었던 물음표가 느낌표로 곧게 펴질 때
꽃을 먹었다. 무슨 맛인지 궁금했지만, 묻지 말고 먹은 뒤 나의 물음표를 직접 곧게 펼쳐야 했다. 먹고 난 뒤 체리 껍질 맛이 느껴졌고, 그제야 사랑초라는 꽃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주 작은 과일을 먹었다. 난생처음 보는 작은 과일이지만, 이번에는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생각에 조금 설레었다. 달달한 딸기, 수박처럼 생긴 오이, 토마토였다. 알고 먹으면 당연한 맛이라고 느꼈을 것들이 모르고 먹으니 새롭게 느껴졌다.
이 모든 게 사장님이 계획한 것이었다. 한식을 먹는데도 낯설었다. 익숙한 것도 낯설게, 알던 것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제일’.
그는 창작자로서 ‘제일’이라는 공간이 건네는 신비스러움을 열심히 음식과 공간으로 그려냈다.
굽었던 물음표가 느낌표로 곧게 펴질 때, 나 자신이 경험에 갇혀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이곳을 인스타 감성 넘치는 컨셉 가득한 공간으로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편견을 가지고 바라봤다.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화장실의 깨진 세면대, 텅텅 빈 공간에 옛날 간판으로 있어 보이는 척하는 곳이라고.
그러나 전혀 달랐다. 사장님은 우리의 편견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공간과 음식을 기획했다. 이 낯선 장소를 보고도 편견으로 치부해버렸던 마침표를 물음표로 만들었고, 새로운 마침표가 될 느낌표를 자아냈다.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9-9
⏰ 18:00 ~ 23:00 (일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