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윤동주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윤동주 시인의 시를 모르지 않을 것.
이번 광복절, 그의 일본 형무소 수형 기록 문서가 발굴됐다.
그는 시인이자 동시에 독립운동가였다.
직접 무장을 하고 투쟁을 하지는 않았지만, 저항시와 삶에 대한 고뇌가 담긴 시를 많이 쓴 그.
“저는 느낀 그대로 썼을 뿐입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생활 속에서 현실에 가슴 아파하고 삶에 대해 끝없이 고민했다.
27세의 나이로 짧게 살다 간 시인 윤동주.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아려오는 그의 삶의 궤적을 훑어본다.
그의 생애
그는 짧은 생애 중 반에 해당하는 14세까지 풍요로운 가정 속에서 감수성을 키웠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별, 해와 달 등의 이름을 붙여줬다.
유년 시절의 아버지의 부름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작품이 나오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그는 1941년 연희 전문학교를 졸업, 졸업 후 일본 유학길에 올라가 릿쿄 대학을 다녔다.
그리고 도시샤 대학으로 편입. 학교에는 그의 시비도 세워져 있으며, 일본인들도 그를 기리며 추모한다.
그는 재학 당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썼고, 총 3부를 직접 적어냈다.
후배 정병욱에게 주었던 1부가 아직까지 남아 그의 대표작으로서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살아생전 시집을 내고 싶었던 윤동주. 그는 소원을 이루기 전에 감옥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치안유지법으로 일본인들에게 체포되었던 그는 조선어로 시를 썼다는 죄, 조선 문화 유지 향상에 힘쓴 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의 시집은 그가 죽고 3년이 지나서야 친구들에 의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별을 그리다
우리나라 대표 시인인 만큼 눈에 익는 시들이 많다. 또한 오마쥬 되는 문장도 많은 그의 시는 가슴 한편에 겹겹이 쌓인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리고 별 헤는 밤, 별에 대한 시를 많이 쓴 그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헤아릴 수 나날들을 생각하며 별을 수없이도 잡고 싶었나 보다.
그의 시를 읽으면 떠올릴 수 없는 누군가를 잡고 싶어만 진다. 그만큼 그의 감성은 독자들의 깊은 구석을 자극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과 태도에 대해 멈추지 않고 고민한 시인 윤동주.
동주
그는 한국 영화 <동주>로 다뤄지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한참 지나 그를 다룬 영화는 <동주>가 사상 처음이었다.
이준익 감독이 흑백의 화면의 연출로 관객들은 비로소 그를 진정으로 만나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그의 가장 절친했던 벗, 송몽규도 함께 나온다.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한 벗에 비해 시인을 꿈꾸는 자신이 한없이 비교되며 갈등이 다뤄지며.
그 시대에 태어나 시인이 하고 싶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져서 <서시>와 같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만의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윤동주는 자신의 사상을 써 내려간 시로 일본인들에게 취조받았고, 결국 형사가 원하는 대로 서류에 서명을 하고 매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그의 유해는 북간도 묘지에 안장되었다. 너무 오랜 시간 찾아갈 수 없던 곳에 외롭게 남겨진 윤동주.
대신에 그의 시가 수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사랑받았다.
더 나은 삶을 이어가기 위해 칼 대신 펜을 쥐고 시를 써내려가며.
“죽는 날까지 한점 부끄럼 없기를”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한 치 앞의 미래가 보이지 않던 시대에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본 시인 윤동주.
그의 시를 읽으며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다시 한번 탐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