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서점에서 시집을 하나 발견했다. 과거 어느 한 드라마에 나와 궁금했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그 자리에서 펼쳐 읽었다. 이처럼 드라마에 시집이 등장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다. 작품에 따라 비중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방영 후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는 것처럼 대부분 등장만으로도 화제가 된다.
시는 호흡이 짧다. 그만큼 부담 없이 펼쳐볼 수 있지만 그 의미를 단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대게 함축적인 표현과 운율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해석의 여지가 넓은 것도 특징. 그렇기에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도 매력이다. 특히 이러한 시를 한 권에 모아놓은 시집은 두고두고 꺼내 읽기 좋으며,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선물하기도 좋다.
문득 드라마에 등장한 다른 시집들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준비한 드라마 속 시집 모음. 평소 드라마를 즐겨보고 문학을 사랑하는 이라면, 아래 시들을 찾아 읽어보고 해당 작품을 정주행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보다 더 좋은 봄맞이 방법이 또 있을까?
<로맨스는 별책부록> 마음이 살짝 기운다(나태주)


‘책을 읽지 않는 세상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문학 드라마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시집을 비롯한 다양한 책들이 등장한다. 그중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주인공인 차은호(이종석)가 극 중 강병준 작가를 간호하며 자신의 마음을 전해 읽은 시.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따뜻한 시선과 안녕을 건네는 위로가 담겨 있다.
“꿈꾸라 그리워하라 깊이, 오래 사랑하라 우리가 잠들고 쉬고 잠시 즐거운 것도 다시금 고통을 당하기 위해서이고 고통의 바다 세상 속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또다시 새롭게 꿈꾸고 그리워하고 깊이, 오래 사랑하기 위함이다.”_「명사산 추억」 中
<화양연화-삶이 꽃이 되는 순간> 그 여름의 끝(이성복)


에디터가 서점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그 시집. 애틋한 첫사랑을 다룬 드라마로, 주인공인 두 인물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이 교차되어 보여진다. 극 중 대학 시절 한재현(박진영)을 따라다니는 윤지수(전소니)에게 재현이 서점 주인을 통해 몰래 건넨 책. 두 인물의 풋풋함과 90년대 시대 배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는 만나지 않았으니 헤어질 리 없고 헤어지지 않았어도 손 잡을 수 없으니 이렇게 기다림이 깊어지면 원망하는 생각이 늘어납니다.”_「그대 가까이 2」 中
<남자친구> 꽃을 보듯 너를 본다(나태주)


송혜교, 박보검 주연의 멜로 드라마. 쿠바 여행을 다녀온 김진혁(박보검)이 차수현(송혜교)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과 함께 선물하는 시집이다. 드라마 방영 이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다시 주목받은 책이기도. 시인 나태주의 작품 중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시들만 모아 엮은 책으로 반가운 시들이 가득하다.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_「그리움」 中
<도깨비>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김용택)


2016~17년 최고의 화제작. 핫한 건 배우들만이 아니었다. 극 중 김신(공유)이 저 멀리서 달려오는 지은탁(김고은)을 바라보며 나레이션하는 장면. 김용택 시인이 엮은 필사 시집으로, 그중 읊은 김인육 시인의 시가 큰 주목을 받았다. 방영 당시 도서 판매 종합 부분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례적인 현상을 보이기도.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_「사랑의 물리학」 中
<갯마을 차차차> 에코의 초상(김행숙)


사람냄새 가득한 바닷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힐링 로맨스작. 극 중 쉽게 잠들지 못하는 윤혜진(신민아)에게 홍두식(김선호)이 한 시집을 골라 읽어주는데, 읽자마자 곧바로 잠이든 여자 옆에서 담담히 읽어 나가는 남자의 감정선이 잘 드러난 장면이다. 이 책 또한 방영 직후 시 분야 베스트셀러에 진입하기도 했다.
“당신을 부정하기 위해 다음 날도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다음 날도 당신을 기다리다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리하여 나의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_「문지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