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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 : 박정섭] 프렌치 요리와 사랑에 빠진 남자

화구 앞을 벗어난 그의 일상을 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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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붐비는 점심시간,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한 레스토랑 테이블 너머에서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원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방문객이 머무는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 화구 앞에서 하루를 보내는 키친 인원들의 일상은 어떠할까? <글로우업> 매거진의 인터뷰 시리즈, [OOO: Out Of Office]의 두 번째 주인공은 셰프 박정섭. 프렌치 요리를 사랑한 그와 나눈 요리의 대화를 공유한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름은 박정섭. 96년생이고 동대문구 신설동에 거주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학동로에 위치한 빈호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잠깐 일을 쉬는 중.

빈호는 어떤 곳이었나.

오픈 당시에는 와인바였는데, 점점 다이닝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좋은 퀄리티의 서비스와 음식을 연구하다 보니 파인다이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22년 8월에 시작해서 24년 3월에 퇴직했다. 

그간 어느 레스토랑을 거쳐왔나.

처음 일했던 곳은 밍글스. 스타쥬(견습생)를 하고 싶어서 지원했는데 자리가 없어, 홀에서 일하다 3개월 만에 주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의 수셰프님이 마테오 견문록이라는 레스토랑을 오픈하셔서 그곳에서도 1년 일했다. 비스트로드 욘트빌이라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거쳐 다다르게 된 곳이 빈호.

직장을 옮겼던 이유들이 궁금하다.

처음에는 다양성을 추구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경험을 무조건 많이 해보고 싶었다. 한식, 이탈리안, 프렌치를 경험해 보니 프렌치가 맞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찾아다녔다. 다음 행선지도 프렌치 쪽으로 가지 않을까. 

프렌치, 뭐가 그렇게 매력적인가.

프렌치 특유의 세심함에 마음을 뺏겼다. 조리법 자체도 다양하지만 정확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세밀함을 요구한다. 레시피를 보면 꼭 책을 읽는 기분. ‘복잡해서 멋있다’가 아니라 ‘요리에 진심이구나’가 느껴져서 좋다. 

어떤 프렌치 요리를 만드는 걸 좋아하나?

프렌치 어니언 수프. 누군가에게 대접해 주거나 혼자 먹기도 좋고. 만드는 과정이 단순한 건 아닌데, 먹었을 때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스타트 디쉬로 내놓기 좋은 음식. 

그렇다면 가장 먹기 좋아하는 프렌치 요리는?

먹기 좋아하는 건 비프 부르기뇽같은 거? 야채, 고기, 육수, 와인을 넣고 푹 끓여 내는 음식이다. 국물은 진하고 고기와 야채는 부드럽고. 조리 시간은 좀 걸려도 밥을 곁들여 먹기 제격이다. 프랑스인들은 감자랑 먹겠지만 나는 밥을 더 선호한다.

휴일을 즐기는 셰프들의 일상이 궁금하다.

내가 만났던 키친 인원들의 대부분은 쉬는 날에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궁금했던 레스토랑의 음식을 먹으러 간다. 따라 하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레스토랑을 많이 가는 것 같다. 

박정섭 셰프가 최근에 갔던 곳은?

나는 논외다. 먹으러 많이 안 다닌다. 경험해 보고 싶은 맛이 있다면 시간과 돈을 안 아끼고 찾아가긴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굳이 찾아가진 않는다.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최근에 방문했던 건 밍글스. 미슐랭 스타를 딴 기념으로 그곳에서 회식했다.

집에서는 주로 어떤 요리를 하나?

집에서는 한식. 한식이 너무 질리면 냉동실에서 고기나 생선을 버터에 구워 소스와 함께 먹는다. 그래도 밥은 빼놓을 수 없다.

나만의 집밥 레시피가 있을까.

알리오올리오. 이탈리안들이 간단하게 야식으로 배 채우기 위해 자주 해먹는 요리다. 먼저 마늘을 곱게 칼로 다져 올리브오일에 담가 놓는다. 여기서 포인트는 으깨거나 갈면 안 된다는 것.

오일에 담가 마늘 향이 배게끔 해둔 다음 페퍼론치노를 추가한다. 이를 팬에 붓고 약불에서 갈색빛이 나기 전까지만 익혀준다. 천천히 볶아준 다음 면수와 육수를 넣고 파스타면을 넣으면 끝. 육수는 매번 내기가 번거로워서 이금기의 치킨 파우더를 사용하고 있다.

떼놓을 수 없는 나만의 도구는 무엇인가.

집게. 조리 용어로 텅이라고 하는데, 이걸로 모든 걸 집고 옮긴다. 손에 잘 맞는 텅을 사용해야 요리가 수월해진다. Cuisipro라는 브랜드의 제품을 학생 때 구매했는데, 익숙해져서 지금까지 쓰고 있다. 비싼 만큼 부드러운 듯.

그렇다면 가장 자주 사용하는 재료는?

소금과 버터. 소금은 말돈 소금을 사용한다. 보통 고기나 생선에 많이 뿌리는데 입자가 크고 거칠다 보니 부드러운 육질과 대비되는 바삭함을 느끼게 해준다. 음식 위에 뿌리는 소금으로는 거의 이 제품을 사용한다. 

버터는 앵커버터를 쓰는데, 이유는 단순한다. 비싼 버터랑 싼 버터 사이 딱 중간이어서. (웃음) 레스토랑에서도 이 버터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요리가 아닌 무언가를 했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나.

그래도 몸 쓰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아마 건설 현장이나 그런 쪽? 활동적인 성향은 키친에서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신체적으로 지치는 걸 이겨낼 수 있는 건 결국 체력이다.

키친 생활의 노하우가 있을까.

적당히 일하는 것. 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고 많이 배우는 건 좋지만, 몸과 마음의 한계를 파악하고 적정선을 유지하는 게 좋은 것 같다. 그 이상 넘어가면 지치고, 지쳐서 효율이 떨어지면 앞서 보여줬던 열정이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한다. 오래가는 게 최고다. 

주변의 누군가가 요리를 해보고 싶다 했을 때 건넬 조언이 있다면?

“갈 수 있는 곳 중에 가장 힘든 곳을 가라”. 본인의 한계를 늘릴 수 있기도 하고, 최대치로 경험해 봐야 비로소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설동에서만 올해로 5년 차라고. 가장 애정하는 공간 2곳만 추천해달라.

첫 번째로는 영광 식당. 할머님이 운영하시는 백반집이다. 그 옆에 어머니 대성집은 선지 해장국집인데 맛이 일품이다.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당장의 목표는 해외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다. 일본에 오마주라는 미슐랭 2스타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는데 그곳에서 일을 배워보는 것이 목표다.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레스토랑을 여는 것이 아닐까. 프렌치 중에서도 샤퀴테리라는 육가공품을 좋아하는데, 북촌이나 서촌 부근에 샤퀴테리 전문점을 열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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