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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약을 믿을 수 있는가

데미안 허스트가 당신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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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악동, 이단아, 그러나 앙팡 테리블, 그는 데미안 허스트. 1998년, 데미안 허스트는 ‘약국(Pharmacy)’이라는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오픈해 또 한 번 화두에 올랐다. 늘 기존의 상식을 깨고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허물어온 데미안 허스트답게 ‘약국’은 단순한 레스토랑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다. 약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88년부터 이어졌는데, 이는 애정 어린 관심으로 탄생한 작품이 아닌 의문으로부터 시작했다.

데미안 허스트의 ‘약’ 시리즈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비롯되었다. 예술은 쓰레기라고 도외시하며 믿지 않았던 어머니. 그러나 의사가 말하는 약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였다. 그리고 데미안 허스트는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의학을 맹신하고 약에 의존하는가. 당신은 약을 믿을 수 있는가.

Medicine Cabinets (1988)

데미안 허스트의 약에 대한 탐구는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Medicine Cabinets’. 그는 일반적인 약장을 예술 작품으로 변모시켰다. 약장은 단순히 의약품을 보관하는 공간을 넘어 생명을 유지하는 장치로써 기능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빈 약통들만 늘어져 있을 뿐이다. 그는 의약품을 실용적 도구가 아닌 인간 생명의 유약함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여겼다.

Pharmacy (1992)

4년 뒤 데미안 허스트는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 처음으로 약국을 재현했다. ‘Medicine Cabinets’의 약장들을 고스란히 미술관에 옮겨놓은 것이었다. 새하얀 방에는 수많은 약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약은 우리의 삶을 연장하는 도구이기도, 동시에 죽음이 불가피함을 일깨워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러나 우리는 불멸을 믿고 싶어 한다.”

이 공간의 천장에는 살충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인간의 필멸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매개체다. 우리는 늘 죽음을 회피하지만 결국 생명은 유한하다.

Pill Cabinets (1999)

‘Pill Cabinets’에서는 약통 대신 알약을 전시했다. 그리고 작품 뒤에는 거울을 배치하여 관람객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알약과 자신을 함께 마주하며, 둘 사이의 관계와 신뢰에 대해 되돌아본다. 나열된 수백 개의 알약들. 일부는 실제 알약이지만 일부는 금속이나 석고로 만들어진 가짜 알약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약물들을 복용하며 의학을 맹신해왔다.

Spot Paintings (2014)

알록달록한 점들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사실 이 점들은 알약을 형상화한 것인데, 언뜻 봐서는 알약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쉽지 않다. 이처럼 약은 우리에게 전혀 거부감 없이 다가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알약은 어떠한 미니멀리즘 예술 작품보다도 훌륭하다. 우리는 알약 하나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Pharmacy (1998-2003)

그리고 1998년, 데미안 허스트가 런던 노팅 힐에 ‘약국’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직원들은 프라다에서 디자인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곳곳에는 재스퍼 모리슨이 디자인한 가구가 놓여 있었다.

개점 후 영국 왕립 제약 협회는 ‘약국’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고, 때문에 이름이 일시적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잡음이 끊이질 않았던 ‘약국’은 5년 후인 2003년 폐점했다.

약국은 문을 닫았지만 작품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소더비 유럽 지사의 회장 ‘올리버 바커’ 눈에 띈 것이다. 이후 데미안 허스트는 소더비와 직접 계약을 맺어 또 한 번 전례 없는 행보를 보였다. 생존 작가가 직접 경매사와 계약한 것은 최초였기 때문. 당시 소더비의 경매 카탈로그를 살펴보면, 그가 레스토랑을 운영할 당시 사용했던 알약과 가구는 물론 가게의 조명과 접시, 양념통, 조리도구 등이 경매에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세계 최대의 경매 시장인 소더비에 166개의 작품이 나왔다. 그리고 1,1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수익을 냈는데, 이는 5년간의 레스토랑 매출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평생에 걸친 데미안 허스트의 ‘약’에 대한 탐구. 그는 여전히 질문한다. 당신은 약을 믿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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