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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난 유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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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 1일, 강변북로에서 큰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중앙선을 침범해서 달려오던 택시와 승용차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 이 사고로 차 안에 타고 있던 젊은 나이의 가수가 숨을 거뒀는데, 그의 이름은 유재하. 당시 그의 나이는 25살이었다. 

유재하

편하게 배웠습니다

“야, 재하야. 아무리 급해도 모차르트를 베껴 오면 어떻게 하냐.” 유재하가 작곡한 곡에 대해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교수가 한 말이다. 당시 그가 제출한 과제는 모차르트를 모방하지 않았다. 그만큼 뛰어난 곡이었다는 뜻일 뿐. 

1962년 6월 6일에 경상도에서 태어난 유재하는 유복하게 살았다. 그의 부모는 뛰어난 사업가였고,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다. 그의 사진을 보면 복장이 다소 촌스러운데, 그저 개인적인 취향이 그랬던 것일 뿐 돈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진학한 대학교 학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음악을 사랑했다. 가족도 그의 꿈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니, 그는 다양한 악기를 배웠고, 작곡과 작사에 몰두했다. 기록을 보면 그가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 클래식 악기 연주에 능통했던 것으로 나와있는데, 단 한 장밖에 없는 그의 앨범에 수록된 곡들에 클래식 악기 사운드가 녹아들어 있는 이유다.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유재하의 대표곡 ‘사랑하기 때문에’는 조용필의 7집 앨범에서 먼저 공개됐다. 그는 대학교 2학년 시절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드 연주자로 발탁됐다. 

본격적인 음악 활동의 시작이었는데, 당시 학교에서 대중음악 분야에서 연주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왔고, 그는 불과 2개월 만에 연주자 활동을 그만두게 됐다. 

유재하

사랑하는 동생 배신자 친구 재하에게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까지 무사히 마친 유재하는 또 다른 한국의 전설적인 가수 ‘김현식’의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키보디스트로 다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더 이상 그의 활동을 방해할 그 무엇도 없었지만, 봄여름가을겨울과 유재하의 인연은 이번에도 오래가지 못했다. 유재하가 직접 자기 발로 밴드를 나갔기 때문. 이때도 유재하는 조용필 밴드에 ‘사랑하기 때문에’를 줬듯이 훗날 자신의 대표곡이 될 ‘가리워진 길’을 줬다. 

3개월 만에 밴드와 유재하는 이별했지만, 김현식과 유재하의 관계는 이후로도 쭉 이어졌다고 한다. 술친구로 자주 만나며 관계를 이어갔는데, 김현식이 완성된 3집 앨범을 선물로 보내줄 때도 유재하에게 ‘사랑하는 동생 배신자 친구 재하에게’라는 메모를 남겼을 정도로 가까웠다고 한다. 

유재하

천재였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짧은 활동을 했던 유재하는 1987년에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 앨범을 홀로 완성했는데, 편곡부터 악기 편성, 앨범 콘셉트 설정 등 앨범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을 혼자서 해결했다. 단 한 장의 앨범을 가진 가수임에도 천재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재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지금 들어도 세련된 곡들로 가득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시대적 한계로 인해 지금처럼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앨범 한 장을 발매하기 위해 대단히 노력했던 유재하는 실망했다. 그래서였을까, 안 그래도 술을 좋아했던 그가 술병을 잡는 일이 전보다 더 많아졌다. 

유재하

“형, 잠시 나갔다 올게”

1987년 10월 31일,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평소에 잘 가지도 않던 동창회를 가겠다며 형에게 인사를 건네고 집을 나선 유재하. 인사는 그의 유언이 되었고,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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