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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이브’가 뭐라고

이브 생 로랑에 '이브'가 사라지면 싸움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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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천재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천재’라는 숭배하는 듯한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디자이너다.

그는 21세에 디올 하우스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맡았고, 스타덤에 오른 뒤 자신의 이름을 ‘생 로랑’으로 줄여서 말했다. 자신의 풀네임은 불어가 어색한 대중들이 발음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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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이름 ‘이브 생 로랑’과 ‘생 로랑’에는 음과 양의 대립으로 얽혀있는 이야기가 있다.

도대체 그놈의 ‘이브’가 뭐라고 대립구도가 형성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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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슬리먼이 지휘봉을 잡은 ‘생로랑’

이브 생 로랑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첫 번째 전쟁, 에디 슬리먼의 생로랑이다. 디올 옴므에서 물러났던 에디 슬리먼이 두 번째로 정착했던 곳은 ‘이브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의 지휘봉을 잡은 에디 슬리먼은 설립자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브랜드명을 과감하게 바꿔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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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이 그의 이름 앞에 ‘이브’를 떼어내고 자신을 소개했듯이, 브랜드명은 ‘생 로랑’이 되었다.

‘이브 생 로랑’을 사랑했던 팬들은 당연히 엄청난 반기를 들었다. 이브 생 로랑, 톰 포드의 명맥을 이어오던 스테파노 필라티가 전개한 ‘이브 생 로랑’의 아이덴티티를 그리워하는 이들과 에디 슬리먼의 ‘생 로랑’을 반기는 사람들의 입씨름은 당시 패션씬의 화제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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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때 싸웠던 사람들은 에디 슬리먼이 셀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되며 올드 셀린과 뉴 셀린의 대립구도를 보고 과거 본인들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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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 vs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의 이름을 딴 전기 영화가 두 개 있다. 바로 잘릴 레스페르의 <이브 생 로랑>과 베르트랑 보넬로의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의 삶을 다룬 영화이자 그의 연인까지 얽혀있기에, 지금 소개할 두 번째 전쟁이 아마 메인 이벤트일 것.

이브 생 로랑, 어떻게 살았을까

전기 영화의 대결인 만큼, 그의 생애를 간략하게나마 알아야 할 것. 이브 생 로랑은 크리스찬 디올의 죽음으로 21세의 나이에 브랜드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맡았고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디올에서의 마지막 컬렉션이 혹평을 받고, 군 입대와 함께 디올에서 쫓겨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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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못한 상황에 약물 및 알코올 중독으로 피폐해지던 그의 삶에 ‘피에르 베르제’라는 남자가 나타났고, 둘은 연인으로 발전하며 브랜드까지 함께 만들었다. 이후 디자이너로서 승승장구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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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의 화려한 삶 이면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아직 숨겨놓을 것이다. 재밌는 이야기는 마지막에 나오는 법이니까.

피에르 베르제가 선택한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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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 당시 이브 생 로랑은 이미 세상을 떠났던 상태였다. 남아있던 그의 연인 피에르 베르제는 어떤 영화에 손을 들어주었을까?

정답은 <이브 생 로랑>. 이유는 간단했다. 이브 생 로랑의 생애를 조금 더 ‘순수’하게 다룬 전기 영화였기 때문.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 생 로랑>에 권한을 부여하고 가지고 있던 이브 생 로랑의 아카이브 77점을 영화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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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화려했던 이브 생 로랑의 이야기

베르트랑 보넬로의 <생 로랑>은 조금 달랐다. 잘릴 레스페르의 <이브 생 로랑>과 달리 생 로랑의 문란했던 뒷모습을 중심으로 극을 이끌어나가기 때문. 역설적이게도 이는 이브 생 로랑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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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뒀던 한 가지 사실을 지금 공개한다. 바로 이브 생 로랑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 하나 더 흥미로운 점은 상대가 칼 라거펠트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는 ‘자크 드 바셰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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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에서 이 사실을 다루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전기 영화를 피에르 베르제가 원한다고 좋은 모습만 보이게 편집할 수는 없으니. 피에르 베르제 또한 사실적인 모습을 원했고, 그런 모습이 담겨 있다. 오히려 <이브 생 로랑>이 리얼리즘에 더욱더 가까운 영화다. 생 로랑의 오래된 영상 인터뷰 연구, 생 로랑 기록 보관소를 조사, 디자이너와 함께 일했던 일러스트레이터와 작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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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이브 생 로랑>은 전체적인 생애를 집중적으로 다뤘고, <생 로랑>은 디자이너의 업적보다는 스테이지 뒤에서 화려했던 삶이 어떻게 생 로랑을 어둠으로 이끌었나를 중심으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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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았다

<생 로랑> 속 의상들은 피에르 베르제에게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 아카이브를 사용한 <이브 생 로랑>과 달리 모두 커스텀 의상이다. 6-70년대 이브 생 로랑의 전설적인 컬렉션을 직접 구현해낸 <생 로랑>의 코스튬 디자이너 ‘아나이스 로만드’는 ‘프랑스 세자르 어워드 의상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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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에 개봉한 같은 주제의 두 영화. 이들의 대결은 끈질겼다. 프랑스의 오스카라고도 불리는 2015 세자르 작품상에 동시에 노미네이트되었으니. 작품상은 베르트랑 보넬로의 <생 로랑>이 얻었다.

<이브 생 로랑> 이브 생 로랑과 가장 가까운 인물 피에르 베르제의 선택을 받으며 실제 아카이브를 사용하는 영예를, <생 로랑>은 영화로서 세자르상을 받는 영예를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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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화가 더 우월한 지 결정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다. 그러나 이브 생 로랑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이브 생 로랑>을, 150분의 긴 러닝타임이지만 디올 이후 생로랑에서의 영예를 누리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각색한 영화가 보고 싶다면 <생로랑>을 추천한다. 두 영화 속에는 이 글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으니, 이 글로 인한 스포일러 걱정은 ‘조금’ 덜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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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의 이름에 얽힌 전쟁 이야기. 이브 생 로랑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이어오던 스테파노 필라티의 ‘이브 생 로랑’과 에디 슬리먼의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의 생애를 다룬 전기 영화 잘릴 레스페스의 <이브 생 로랑>과 베르트랑 보넬로의 <생 로랑>.

그의 이름에서 ‘이브’ 하나를 떼면 싸움이 일어났다. 나의 이브 생 로랑은 ‘생 로랑’인지 ‘이브 생 로랑’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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