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나를 원한다. 그러나 이를 탐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결국 스스로를 잃어가는 것일 뿐, 실상은 사회가 정한 비가시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서브스턴스>는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이상향이 결국 자신을 잃게 만드는 과정임을 고발한다. 나는 나를 미워한다. 이는 도화선이 되어 결국 나를 파괴한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 분)은 한때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던 배우였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도 입성했던 그녀.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그 영광을 지워간다. 밟히고 더럽혀져 빛바랜 별처럼 말이다. 이제 그녀에게는 50대 여배우라는 꼬리표만이 남았다. 외적인 것이 전부인 스크린 속 세계에서는 더욱이 그랬다. 1930년대부터 이어진 할리우드의 스타 시스템 속에서 나이 든 엘리자베스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사회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 그녀는 더 이상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아닌 그저 50대 여배우였다.
그런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를 갈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더 어리고 예쁜 내가 되는 방법뿐이지 않은가.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애쓸수록 자기혐오만 더해갔을 뿐,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더 나은 나’인 수(마가렛 퀄리 분)도 결국 더 나은 내가 되고자 했고, 결국 몰락만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에게 혹독했고, 많은 것을 잃었을까.
영화 속에서 엘리자베스가 누렸던 영예는 불과 오프닝 시퀀스, 몇 분 남짓한 시간뿐이었다. 그리고 남은 2시간 동안 관객은 무너진 엘리자베스의 기나긴 시간과 함께 하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이 영화가 그토록 불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비단 ‘몬스트로 엘리자 수’ 때문만이 아니다. 늘 당연시 여겼던 사회적 기준이 얼마나 파괴적인지에 대한 직시에서 오는 불안.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우리 내면 깊숙이 있던, 모두가 애써 순응하고 살아온 불편한 것들을 꺼내 면밀히 보여준다.
사회가 정한 틀에 억지로 나를 가두고자 발버둥 치는 수, 그리고 더 나은 내가 되고자 발버둥 치는 엘리자베스. 그들을 보며 누군가 극장에서 ‘독한 년’이라며 중얼거렸다. 사회가 정한 여성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수가 되는 것?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40대에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네 인생은 끝났어. 아무도 널 신경 쓰지 않을 거야’와 같은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렸다. 나는 스스로 어떻게 평가될지에 대해 걱정해왔다. 이처럼 내가 느낀 문제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매우 폭력적이고 과하길 바랐고, 이러한 불편함이 미묘하게 느껴지지 않길 바랐다.”
비슷한 맥락에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캐리>(1976)와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델마>,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과 <로우>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들 역시 여성의 억압과 해방을 다룬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도 마찬가지로 영화로 이에 맞섰다. <서브스턴스>는 엘리자베스 스파클을 연기한 배우 데미 무어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일생과 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메타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 되었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캐스팅 과정 중 겪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중년 배우가 몰락한 이후의 삶을 연기한다는 것이 민감한 문제일 수 있음을 우려한 것. 그러나 대본을 전달받은 데미 무어는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감독에게 자신의 자서전을 건넸다.
어쩌면 엘리자베스 스파클과 데미 무어는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과거 제리 주커 감독의 <사랑과 영혼>으로 할리우드의 한 시대를 풍미했으니. 외적인 것에 주목을 받았던 데미 무어 또한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대중의 시선에 휘둘렸고, 평가받았다. 더군다나 전신 성형에 대한 루머와 가십은 그녀를 수십 년간 괴롭혔다. 이와 같은 압박과 기대 속에서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은 미미한 성과를 거뒀다.
이제 그녀는 프랜차이즈 영화에서 벗어나 예술 영화에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이는 배우로서의 커리어에 있어 전환점이자, 자신과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할 터. <서브스턴스>는 데미 무어가 겪어온 대중으로부터의 압박, 외모에 대한 강박,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물이다.
엘리자베스의 몰락은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다. 우리는 여태 얼마나 스스로를 혹독하게 판단하고, 사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었는가.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내어 보여주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그 견고한 틀을 말이다. 영화는 시대의 거울이다. 당신의 거울에는 지금 무엇이 보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