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의 난쟁이, 드워프족이 사는 난쟁이 굴, ‘크하잣둠’. <헝거 게임>의 핵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 주민들이 건설한 지하 도시가 등장한다.
지하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 지하 도시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지상에서 살기 힘든 사람들이 땅을 파고 내려온 것. 가상의 디스토피아 장르 작품들에게 웅장한 지하 도시는 최고의 소재거리다.
그런데, 영화에서나 보던 지하 도시가 현실 세계에도 존재했다. 약 4천 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의 웅장한 지하 도시. ‘데린쿠유(DerinKuyu)’.
지하 11층, 85m에 달하는 데린쿠유의 깊이는 지상에 지어졌다면, 20층 이상의 고층 빌딩과 높이가 맞먹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땅속 마천루인 셈.
키우던 닭이 자꾸 도망쳐서 사라지길래
데린쿠유 지하 도시는 정말 우연히 발견되었다.
1960년대, 마을의 닭이 자꾸만 한 마리씩 사라졌다. 찾아보려고 쫓아가 봐도 갑자기 사라져서 찾을 수가 없었던 마을 사람들. 어느 날, 이상함을 느낀 한 농부가 또 도망치는 닭을 제대로 쫓아가 보았다. 그런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움푹 파인 구멍이 땅속에 존재했다. 도망치던 닭이 그 조그만 구멍에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고, 농부는 다른 닭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구멍에 들어가 보았다.
정교하게 지어진 우물 같은 구멍. 심상치가 않았다. 길을 따라가보니 거대한 지하 도시가 눈앞에 펼쳐진 것.
그는 곧바로 튀르키예 당국에 신고했다. 그렇게 현존하는 가장 큰 지하 도시, 데린쿠유가 세상에 알려졌다.
어쩌다 지하 도시가 형성되었나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평원 아래 만들어진 거대한 지하 도시, 데린쿠유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를 알아보려면, 먼저 카파도키아의 환경을 살펴봐야 한다.
화산 활동이 매우 활발한 곳이라 지역 인근 암석층이 부드러운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특별한 기구의 도움 없이도 땅을 파기 수월했다고. 땅을 팔 때는 부드럽지만, 공기와 계속해서 만나면 딱딱하게 굳었다.
덕분에 카파도키아는 지하 도시 건설에는 최적의 환경이 되었다. 실제로 데린쿠유 주변에는 수많은 지하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지하 도시를 건설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하더라도, 데린쿠유만큼 큰 도시를 땅 밑에 건설하는 과정이 아주 복잡했을 것.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카파도키아가 패권 싸움에 휘말리기 쉬운 지역이라 몸을 피하기 위해 데린쿠유를 건설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이 정도로 크지 않았다고 한다.
데린쿠유가 거대한 지하 도시가 된 것은 동로마 제국 시대, 그리스도교 탄압 때문이라고. 당시 무슬림 아랍인, 튀르크족이 그리스도교 박해를 위해 자주 이들을 습격했다. 목숨을 부지하며, 종교를 이어가야 했던 이들은 한 명씩 지하 도시로 이주하게 됐고, 오랫동안 이곳에 숨어 살며 견뎌냈다. 요리도 낮에 하면 연기가 밖으로 보일 수 있어 어두운 밤에만 가능했다고.
시설들은 모두 갖췄다
예배당, 학교, 무덤, 식당, 포도주 양조장까지. 데린쿠유는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유틸리티 시설들을 고루 갖췄다.
지하라 숨은 어떻게 쉬었나 의심이 된다면, 곳곳에 만들어진 거대한 환풍구가 의심을 풀어줄 것이다. 방마다 수직으로 뚫어놓은 환기 구멍들이 연결되게 만들어 지금 봐도 꽤나 과학적으로 제작되었다고 학자들이 이야기한다.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온 사람들이었기에, 습격을 대비한 함정이 곳곳에 존재했다. 피격 시, 적의 이동 속도를 늦추기 위해 통로를 좁게 만들어 한 명씩 처리하게끔 만들었다고. 또, 일부러 갈림길을 만들고, 함정을 만들어 외부인들을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데린쿠유가 개미굴 같은 형태를 갖춘 데는 이런 이유가 있던 것.
덕분에, 칭기즈칸의 침략 당시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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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대단한 건지, 인간이 대단한 건지. 데린쿠유의 이야기를 들으면 경이로움이 한가득 느껴진다. 2만 명이라는 인구가 지하에서 180년 이상을 살았다고 하는데,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런 데린쿠유는 관광이 가능하다. 관광은 지하 55m, 7층까지만 가능하며, 입장료는 15유로. 튀르키예 카파도키아에 방문한다면, 데린쿠유에 방문해 보는 것이 어떨까. 개미굴 같은 데린쿠유에서 길을 잃어 영영 찾지 못했다는 말이 있으니,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