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간 사랑받았던 만화, <원피스>의 시작은 해적왕 골드 로저가 그간 모아두었던 보물들을 숨겨놓은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금은보화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채 일생을 ‘보물 찾기’에 모두 바친 만화 속 주인공들.
현실에서 이런 판타지 같은 삶은 주어지지 않는다며 보물 찾기를 만화 속 이야기로만 치부하고 있다면 오늘, 그 생각은 완전히 뒤바뀔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현실 세계에도 보물 찾기에 혈안이 된 채 ‘헌터’로서의 삶을 사는 이들도 있기 때문. 바로 ‘스캐빈저 헌트(Scavenger Hunt)’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스캐빈저 헌트는 한국의 보물 찾기 놀이와 같이 아이들이 주로 즐기는 게임의 일종인데, 숨겨둔 물건을 찾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물건들의 리스트를 적어놓고 이를 발견하며 리스트를 달성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숲 테마 스캐빈저 헌트’라면 나뭇가지, 새, 은행나무 잎 등을 발견해 나가며 리스트를 완성하는 식. 하지만 어른들의 방식으로,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스캐빈저 헌트를 재치있게 운영해 나가는 아티스트들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중, 스캐빈저 헌터들의 각광을 받으며 엄청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3dfiti’다. 3dfiti는 공공장소에 배치될 3D 작품들을 디자인하고, 그 작품들을 랜덤하게 도시 곳곳에 배치해 스캐빈저 헌트를 전개해 나가는 예술 프로젝트다.
벽돌 틈새를 메우는 라면 면발부터 조약돌 크기의 미니어처 물탱크, 뜬금없는 계란 후라이 모형, 엄지 손가락 크기의 미니 CCTV와 실제 엄지 손가락을 본떠 만든 손가락 모형까지.
그들의 스캐빈저 헌트는 이와 같은 작품들을 만들어낸 후, 도시 곳곳에 숨겨두고 사진을 찍어 SNS와 홈페이지에 업로드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흩뿌려둔 예술 작품들 중 아직 숨겨진 것들은 ‘드랍’ 상태로, 누군가 찾은 것들은 ‘클레임’ 상태로 표시되며, 그간 공개된 작품들의 위치와 현 상태는 모두 그들의 홈페이지 맵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 속 ‘명예의 전당’ 페이지로 가면, 가장 많이 작품들을 찾아낸 3인을 확인할 수도 있다고. 각 작품들에는 QR코드가 새겨져 있어, 이를 스캔하면 자동으로 클레임 되는 방식이다.
아쉽게도 그들의 주 활동 지역은 뉴욕. 종종 시애틀이나 프랑스에도 출몰하곤 하지만 대개 뉴욕 부근에 작품들이 드랍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한국으로 출동할지 모르는 일이니 홈페이지를 늘 확인해 볼 것.
보다 스케일이 큰 스캐빈저 헌트도 있다. 1800년대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보물을 찾는 헌터들도 있고, 엄청난 갑부가 남긴 유산을 찾아 헤매는 헌터들도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 그중 ‘포레스트 펜의 보물’은 당시 엄청난 주목을 받았으나, 10년간 아무도 찾지 못했던 스캐빈저 헌트 중 하나다. 엄밀히 말하자면 ‘트레저 헌트’에 가깝지만, 스캐빈저 헌트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으니 참고.
포레스트 펜의 보물은 미술 중개인이자 작가인 포레스트 펜(Forrest Fenn)이 수십억에 달하는 금괴와 보석, 희귀 동전들을 어딘가에 숨겨두고는 그 위치에 대한 힌트를 공개하며 시작된 스캐빈저 헌트다. 모험과 탐험을 사랑한 그가 1988년, 암 진단을 받은 것을 계기로 대대적인 스캐빈저 헌트를 계획한 것. 보물의 위치가 암시된 9개의 힌트는 그의 자서전 속 시 한 편에 모두 적혀있었다.
‘내가 그곳에 홀로 갈 때, 그것도 대담하게 나의 보물들과 함께, 나는 어디서든 비밀을 간직할 수 있다네, 그리고 새롭고도 오래된 부에 대한 힌트. 시작해 보아라. 따듯한 물이 멈추는 곳, 그리고 협곡으로 떨어지는 그곳. 그렇게 멀지 않지만 걸어가기에는 먼. (이하 생략)’
포레스트 펜은 이 시의 모든 글자, 모든 문장이 아주 날카롭게 보물의 위치를 가리킨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힌트가 너무 어려웠던 것인지 약 10년간 아무도 이를 찾지 못했는데, 포레스트 펜은 방송에 여러 번 출연하며 소소한 힌트를 덧붙여 주기도 했다.
포레스트 펜의 보물이 발견된 것은 그가 사망하기 3개월 전이자, 스캐빈저 헌트가 공표된 지 10여 년이 흐른 2020년 6월 6일. 포레스트 펜이 자신의 블로그에 ‘누군가 보물을 찾았다’, ‘보물 찾기는 끝났다’라고 공식 발표하며 마침내 긴 대장정이 막을 내렸다.
보물을 발견한 것은 32세 의대생으로 밝혀졌으며, 3개월 뒤 죽음을 맞이한 포레스트 펜의 요청으로 인해 발견한 장소를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고. 5명의 헌터들은 이 보물을 찾는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오랜 시간동안 이어져 온 스캐빈저 헌트인 만큼 많은 부상자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소소한 거리의 보물 찾기부터 대 해적 시대를 연상케하는 ‘일확천금’ 보물 찾기까지. 무료해진 일상에 판타지를 집어넣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색 취미로 스캐빈저 헌트를 택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