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충전하고, 필름을 끼우고, 노출을 조정하고, 수십 번씩 누르는 셔터는 ‘찍는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다. 마주친 광활한 현장의 감동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퇴색되기 마련. 어느샌가부터는 힐링하기 위해 찾은 장소만큼은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촬영 후에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돌려가며 색감을 보정할 생각에 벌써 피곤하니. 그러다 마주친 ‘일회용 카메라’. 눈알을 뷰파인더에 욱여넣어야 겨우 구도를 잡을 수 있는 일회용 카메라는 역설적으로 찍는 재미를 선사했다. 완성본에 대한 집착, 구도에 대한 집착도 버리고 나니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글로우업> 독자들도 일회용 카메라를 통해 기록의 참맛을 느껴보길 바라며 추천 기기 3종을 들고 왔다. 에디터의 ‘최애’ 일회용 카메라 모델부터 현상 루틴까지. 바로 소개한다.
코닥 펀세이버
아날로그 카메라를 상징하는 기업 중 하나인 코닥의 ‘펀세이버’. 일회용 카메라 중에서도 대중적인 모델에 속한다. 감도 800짜리 필름이 내장되어 있어 비교적 빛이 적은 곳에서도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 내장된 플래시는 몇 초간 버튼을 눌러 충전시킨 후 셔터를 누르면 발광한다. 필자는 12월에 떠난 보라카이 여행에서 해당 모델을 사용했다.
감도 800짜리 필름을 밝은 바닷가에서 사용하니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한 사진이 탄생했다. 요동치는 윤슬을 아름답게 담아내는 코닥만의 포근한 색감을 원한다면 이 제품을 구매해 볼 것. 소위 말하는 ‘필카 감성’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구매 가격은 2만 2백 원.
후지 심플에이스
후지 심플에이스는 가장 비싸지만, 가장 훌륭한 결과물을 안겨준 제품이다. 후지의 X-tra 400 필름이 장착되어 있으며 플래시 충전 버튼을 올려 램프가 점등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촬영하는 방식. 조작에 있어서는 타제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은 결과물. 비교적 빛이 적은 장소에서 촬영해도 훌륭한 선예도를 보여주었으며, 색감 역시 완벽했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타제품들과 같이 높은 퀄리티를 자랑했는데 역광으로 빛이 들어오는 골목이나 실내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감도가 같은 필름이 장착된 타 모델과 비교해도 압도적. 필자는 이 제품을 쟁여놓기로 다짐했다. 구매 가격은 2만 9천 원.
포토콜라 칼라 400
단돈 2만 원에 구매할 수 있는 저렴한 일회용 카메라, 포토콜라 칼라 400. 사진을 뜻하는 ‘Foto’와 필름을 뜻하는 ‘Pelicola’를 조합하여 만든 국내 필름 카메라 브랜드다. 밝은 곳에서 촬영한다거나, 1.2미터 ~ 3미터라는 권장 거리를 지키고 촬영한다면 훌륭한 결과물을 안겨준다.
다만 아쉬운 것은 어두운 장소에서의 촬영. 대비가 극명한 까닭에 어두운 장소의 표현력은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비감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문제 될 것은 없다. 특유의 푸르른 필름 색감은 코닥, 후지와 다른 매력을 안겨줄 것.
망우삼림
촬영이 끝났다면 스캔을 맡길 차례. 집 근처 현상소를 찾아 맡겨도 무방하지만, 촬영만 하고 던져둔 일회용 카메라가 쌓여있다면 을지로의 망우삼림을 방문해 보자. 필름 카메라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망우삼림은 컬러부터 흑백, 중형, 영화용 필름까지 모두 현상이 가능한 곳이다. 컬러 필름은 두 가지 스캐너 옵션 중 하나를 택해 스캔할 수 있다.
가장 대중적인 스캐너를 원한다면 후지 스캐너를 추천. SNS에 업로드하거나 휴대폰에 사진을 저장해 둘 용도라면 2735 x 1830 (px)의 베이직 타입으로도 충분하다. 가격은 1롤당 4천 원. 저렴한 스캔 가격보다 좋은 건 빠른 스캔 시간이다.
평일 오후 1시, 오픈과 동시에 방문해 3롤을 맡겼는데 당일 밤에 카톡으로 사진을 받아볼 수 있었다. 필름, 카메라 배터리 같은 제품들도 구매할 수 있으니 참고할 것.
20세기 인쇄사무실
망우삼림에서 한 층 더 계단을 올라가면 새롭게 문을 연 20세기 인쇄사무실이 등장한다. 아날로그한 무드의 오브제들로 가득한 이곳에서는 직접 찍은 사진을 티셔츠에 프린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흰색 L 사이즈의 가격은 가장 저렴한 4만 2천 원.
제작 시간도 15분 내외로 짧다. 필자는 XXL 흰색 티셔츠를 선택했다. 오버사이즈로 입고 싶은 것도 있지만, 티셔츠의 종류가 조금 다르기 때문. XXL 사이즈의 티셔츠는 L 사이즈보다 원단이 두껍고 탄탄하다.
아쉽게도 일회용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은 스캔을 맡긴 직후라 프린팅이 불가해서, 과거의 촬영본을 택했다. 강아지가 바닥에 뒹구는 이 사진은 일포드의 흑백 필름, 델타 400으로 촬영한 사진. 카카오톡 메시지로 망우삼림에 사진을 전달한 뒤 티셔츠에 프린트될 사진의 크기만 확정하면 준비는 끝난다.
시중에 판매하는 것 못지않게 퀄리티 높은 커스텀 티셔츠를 5만 원도 안되는 가격에 제작할 수 있다니. 안 할 이유가 없다. 한 장의 사진을 택하기 어렵다면 필름 한 롤을 티셔츠에 프린트하는 옵션도 있다.
가격이 조금 더 높고 제작 시간이 하루 이상 걸리지만, 하나의 순간이 아닌 ‘추억’을 담아내고 싶다면 이 옵션을 추천한다. 가방과 같은 커스텀 서비스들도 기획 중에 있다고.